Public Theology in Forum: Science, Civil Society, Life-World

2026/01/09 15

세미나 강의: 한나 아렌트 (7)

토마스 홉즈의 토마스 홉즈의 은 욥기 40장과 41장에 나오는 짐승의 이름을 부치고있다. 욥기에 나오는 신화론적 짐승 리바이어던은 바빌로니안 신화에 나오는 티아마트와 관련되고 바빌론의 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사 27:1). 리바이어던이 바다의 용처럼 그려진다면, 베헤못은 거대힌 뿔을 가진 땅의 짐승이다. 베헤못이 땅의 지하의 세계를 상징한다면, 리바이어던은 요한 계시록에서 묵시적인 짐승들인 용이나 엣뱀에 가깝다. 묵시적 짐승들은 무저갱에서 올라오거나 바다에서 출현한다. 미가엘 천사는 이들과 하늘에서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계 12). 홉즈의 은 신화론적인 짐승을 상징해서 그런지 진의가 쉽게 오해될 수가 있다. 헤겔은 홉즈의 만인대 만인의 투쟁을 수용하지만 국가이념을 인륜적으로 파악하고, 파시즘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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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강의: 한나 아렌트 (6)

식민지 관료제와 살해정치학 제국주의는 초기단계에서 제국들간의 경쟁과 투쟁으로 파악되지만, 이것은 고대나 중세의 제국의 이념과는 구분된다. 근대의 제국주의 개념에서 열강들간의 경쟁과 정치적 헤게모니의 팽창은 서로 맞물려있었고, 식민지 정복을 위해 강한 군사력과 기술의 진보 그리고 정치적 지배방식을 요구한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생산에서 지배계급이 국민경제의 협소함을 넘어서서 경제적 팽창을 시도할 때 발생한다. 부르주아지들은 경제적인 필요성으로 인해 정치영역으로 눈을 돌린다. 이들은 해외시장으로 팽창해나갈 것을 요구한다. 해외 정책의 궁극적 정치목적은 “팽창을 위한 팽창” 이라는 정치 슬로건으로 드러난다. 경제구조와는 달리 정치구조는 무제한적인 노동의 생산성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대로 팽창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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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강의: 한나 아렌트 (5)

자본축적과 제국주의 정치 아렌트가 인종주의와 제국주의 이론을 사회학적으로 접합시킬 때 그녀의 접근은 로자 룩셈부르크(18 71-1919)의 의 영향을 보인다. 물론 아렌트는 J. A 홉즌의 에서 경제적 축적과 동기를 추동력으로 보고, 여기에 결부된 정치적 중요성에 주목한다. 홉슨은 영국의 리버럴 경제학자이며 1902년 제국주의에 대한 선구자적인 연구를 출간했다. 홉슨에게서 잉여자본으로인해 자본집중은 카르텔과 독점으로 전화된다. 독점자본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제국주의 발전과 연결된다. 제국주의는 산업 자본가들이 국내에서 팔 수 없거나 사용할 수 없는 상품과 자본을 위해 해외시장을 찾고 투자한다. 이것은 잉여의 부의 유동을 원활하기 위해 공급채널을 넓혀가는 자본가들의 노력이다 (Hobson, Impe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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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강의: 한나 아렌트 (4)

반유대주의 유형들과 해명들 아렌트는 자신의 반유대주의 분석을 위해 알렉시스 토크빌의 입장을 수용한다. 토크빌에 의하면, 프랑스의 귀족들은 사법과 재판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존중을 받았다. 귀족들이 특권을 상실할 때, 이들은 나라를 다스리는데 아무런 실제적 기능을 하지 못하는 기생충처럼 여겨졌다. 억압과 착취가 아니라 신분적 특권의 상실이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반유대주의 또한 유대인들이 공적기능과 영향력을 상실하고 경제적인 부만 남겨졌을 때 정점에 달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기 전, 유대인들은 이미 한 세기 이상이나 금융계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사회적 신분과 수적인 성장을 했지만, 히틀러의 정권에서 거의 멸절 당했다. 프랑스에서 알프레드 드레퓌스사건도 제 2제국에서 발생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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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강의: 한나 아렌트 (3)

영화 로스차일드가문 1938년 11월 나치 돌격대에의해 자행된 이 일어나고 유대인 상점과 건물 그리고 회당이 파괴되었다. 나치는 반유대주의 정서를 독일전역에 유포했지만 대부분 양식이 있는 시민들은 여기에 동조하지 않았다. 요셉 괴벨스는 1940년 7월 나치 독일에서 로스차일드 영화를 상영했다. 유대인 로스차일드 가문이 나폴레옹 전쟁시기에서 행한 부패한 사기행각을 그린다. 헤세의 선제후 빌헤름 1세는 프랑스가 지원하는 라인연방에 가입하길 거절했다. 나폴레옹의 위협으로 인해 선 제후는 프랑크푸르트의 마이어 로스차일드 (1744-181 2)에게 영국으로부터 받은 육십만 파운드의 국채를 요구하지만 거절 당했다. 로스차일드는 막대한 이자를 받고 스페인에서 나폴레옹과 전쟁하는 웰링톤 군대를 지원하는 데 자금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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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강의: 한나 아렌트 (2)

어거스틴의 처럼 아렌트의 은 유럽 후기 근대성의 대재난의 역사를 검토한다. 여기에는 제국주의와 반유대주의 그리고 전체주의가 이데올로기적 파라다임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아렌트는 리버럴 민주주의에서 토마스 홉즈의 의 전통에서 칼 슈미트의 히틀러 전체주의 국가론으로 이어지는 소유 개인주의 (로크)와 파시즘정치를 강력히 비판했다. 그러나 아렌트는 칸트를 통한 루소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어거스틴의 카리타스와 큐피디타스의 변증법을 정치이론화했다. 그녀는 로마의 리비도의 지배의 데카당스와 팍스 로마나를 20세기 파시즘의 허무주의에서 재발되는 것을 보았다. 아랜트의 정치이론에는 포스트콜로니얼의 조건을 반성하며 트랜스 모더니티의 차원을 재구성한다. 그녀에게 이론과 실천의 분리는 없다. 인간은 실천하려는 것을 사유한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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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강의: 한나 아렌트 (1)

세미나 강의 시리즈는 동영상 한나 아렌트의 정치이론에 대한 유트브 동영상 강의에 대한 내용입니다. 유트브 동영상은 많은 내용이 압축이 되어서 좀 더 심도있게 아렌트의 정치이론과 민주주의를 이해하길 원하시는 분들은 강의안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조회수에 대한 참여는 강의자에게 큰 격려가 됩니다. 영화 한나 아렌트 2014년 한나 아렌트 영화가 개봉되었다. 독일계 유대인 정치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1906-1975)가 1960-1964년 사이에 겪은 실화를 다루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나치 전범자인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에 대한 그녀의 보고인데, 이스라엘 첩보기관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아이히만을 체포해 예루살렘으로 송환했다. 그녀는 잡지의 특파원 기자로 재판취재를 했지만, 아렌트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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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놀이와 미학

미학적 도전: 언어게임 비트겐슈타인의 미학이론에서 아름다움의 단어는 미의 본질이나 이데아를 포함하지 않는다. 실존주의 미학에서 존재가 본질에 선행하지만, 예술의 미학적 경험은 미의 본질에 선행하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실존주의적 지름길은 없다. "미학적 질문은 심리학적 실험과는 상관이 없다." (Wittgenstein. Culture and Conversations, II. 36). 언어상자 안에는 다양한 단어의 도구들이 있다. 이러한 다른 기능들의 결합은 놀이를 하는 언어게임처럼 나타나며, 미학은 아름다움에 대한 언어적인 사용과 단어들의 연관기능에 주목한다(ibid., I.4). 이것은 미학에서 태도변경을 말한다.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지각이나 경험과 상상력은 이제 언어활동의 네트워크에서 의미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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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과 신학의 문법

비트겐슈타인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단어는 지고하고 완전한 하나님에 대한 그림 언어일 수가 있다. 단어는 수단이며,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 가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단어나 개념의 쇠창살에 갇히지 않는다. 언어는 공적으로 다양한 사용과 활동에서 의미를 맥락에 따라 산출한다. 언어게임은 삶의 형식의 한 부분이 되며, 이것은 규칙에 의해 지배되는 언어의 발화행위이다. 모든 인간의 언어게임과 활동에 공동적인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 65). 오히려 다양한 삶의 형식에는 가족의 유사관계가 존재한다. 언어 사용에서 우리는 동일한 단어가 복잡한 네트워크에서 유사성, 중첩, 또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되돌아오는 반복을 본다 (, 66). 가족 유사성은 메타포적인 표현이며 이것은 규칙과 문법에 의해 규제되는 언어게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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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과 미학: 아리스토텔레스와 니체 (2)

호메로스의 나 는 서사시로서 단순한 운율과 낭송으로 이어졌는데, 대한민국의 판소리에 견줄 수 있다. 그러나 7세기 중반에 서정시가 발전되면서 운율과 악기반주가 곁들여졌다. 5세기 민주정으로 들어오면서 서사시는 서정시와 악기와 합창과 융합되면서 배우들의 행위와 가면과 복장이 나타나고, 평민들을 위한 비극의 드라마로 발전되었다. 534년 경 아테네의 아고라에 있는 디오이소스 제전에서 비극이 처음으로 올려진 것으로 보인다. 사티로스로 분장한 사람들이 종교적 제의의 노래를 불렀는데 사티로스는 디오니소스 신에게 받쳐진 숫염소였다. 비극은 '숫염소의 노래'를 의미하며 원래 종교제의였다. 아테네의 참주 페이스트라토스는 민중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시골에서 열리던 디오니소스 제전을 아테네의 아고라에서 3-4일 동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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