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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강의: 한나 아렌트 (1)

content6462 2026. 1. 9. 00:34

세미나 강의 시리즈는 동영상 한나 아렌트의 정치이론에 대한 유트브 동영상 강의에 대한 내용입니다. 유트브 동영상은 많은 내용이 압축이 되어서 좀 더 심도있게 아렌트의 정치이론과 민주주의를 이해하길 원하시는 분들은 강의안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조회수에 대한 참여는 강의자에게 큰 격려가 됩니다.

 

영화 한나 아렌트

 

2014년 한나 아렌트 영화가 개봉되었다. 독일계 유대인 정치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1906-1975)가 1960-1964년 사이에 겪은 실화를 다루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나치 전범자인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에 대한 그녀의 보고인데, 이스라엘 첩보기관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아이히만을 체포해 예루살렘으로 송환했다.

 

그녀는 <뉴옥커> 잡지의 특파원 기자로 재판취재를 했지만, 아렌트 역시 과거 아픈 경험으로 인해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아이히만에 대한 기소항목은 15가지나 되었고 매우 무거운 사안이었다. 단 한가지 유죄판결이 나올 경우 사형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악의 화신으로 여겨진 아이히만이 법정에 출두했을 때, 그는 50대 중반의 작은 키와 숱이 적은 머리카락에 너무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중년 아저씨의 모습이였다.

 

<더 뉴옥커>에 실린 그녀의 기사는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전 세계에서 일파만파의 파장과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보고>로 인해 그녀는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심지어 유대사회로부터 질타와 생명의 위협 조차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신념과 정치 사회학적 판단을 수정하지 않았다.

 

마르틴 하이데거에 대한 그녀의 관계에서도 이런 면모를 보게된다. 1924년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그녀는 18살의 학생으로 하이데거 교수를 만났고 철학공부를 했지만, 기혼자였던 그와 연인 관계이기도했다. 이후 나치에 협력한 하이데거에게 깊은 환멸을 느껴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칼 야스퍼스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마쳤다.

 

그녀는 학위논문 <어거스틴의 카리타스 개념>을 철학적으로 해석한다. 1929년 출간 되었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1933년 교수 자격취득논문이 거절되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아렌트는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독일 비나치스화 청문회에서 그를 위해 증언했다.

 

야스퍼스는 하이데거를 항상 남을 이용해먹는 사람으로 평가하고 그의 인격을 신뢰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인격이 부족한 사람으로 인정했지만 그의 철학을 존중했다. 하이데거는 으시대면서 사람들이 자기를 여우로 부른다고 말했다. 아렌트는 이런 하이데거를 여우, 그것도 영리하지 못하고 함정에 빠진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여우로 본다 (“Heidegger the Fox,” The Portable Hannah Arendt).

 

급진적 악과 악의 평범성: 안티노미

 

미국의 시민사회와 정치교양교육에서 한나 아렌트의 영향은 상당하다. 인간의 삶의 조건에 기초한 그녀의 정치이론은 노동(개인)-일(사회문화)-행위(정치)에 따라 분류되며, 이런 인식론적인 틀에서 전체주의나 파시즘 또는 인종문제가 다루어진다.

 

그녀의 정치이론은 경험적 사건에 대한 분석에 기초되며, 보수적이든지 진보적이든지 피해가기가 어렵다. 뉴옥에 소재한 바드대학과 사회 리서치 뉴 스쿨은 한나 아렌트 센터와 컨프런스를 통해 그녀의 정치적 통찰과 시민 민주주의를 발전시킨다. 독일의 드레스덴 대학은 한나 아렌트 연구소를 통해 그녀의 전체주의 비판연구를 글로벌 차원에서 발전시킨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독일의 시민사회와 정치교양교육에서 한나 아렌트의 정치이론과 공공선 거버넌스 그리고 파시즘 비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렌트는 20세기 가장 유명한 정치철학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독일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시온주의 활동으로 인해 나치에 의해 체포되지만 곧 풀려나왔다.

 

그녀는 1933년 파시즘의 발흥으로 인해 독일을 떠나 파리에서 6년간 유대인 피난민 기구에서 일을했다. 이 시기에 그녀는 시몬느 드 보브와르의 저술을 알고 있었지만 탐탁치 않게여겼다. 1941년 그녀는 미국으로 이민이 허락되었고 뉴욕에 소재한 사회 리처치 뉴스쿨에서 정치철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5년에 사망했다.

 

그녀의 저명한 저서는 <전체주의의 기원,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1951>과 <인간의 조건, The Human Condition, 1958>으로 꼽힌다. 전자가 나치와 스탈린 체제와 인종주의 그리고 제국주의에 대한 연구서라면, 후자의 저술은 노동, 사회 문화적인 일 그리고 정치 적 행위를 기초로 활동적인 삶(vita activa)을 연구한 철학저술이다.

 

프랑스의 <르 몽드>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20세기에 100권의 베스트 명단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았지만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칼 야스퍼스의 지도로 1929년 <성 어거스틴에게서 사랑의 개념>으로 학위를 마쳤다. 이것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실종된 삶과 인격의 고결함과 사랑을 비판적으로 전개한다.

 

1961년 한나 아렌트는 잡지 <뉴옥커>의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에 참가했고, 2년 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를 출간한 후 유대사회에서 상당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게하르트 숄렘은 아렌트의 입장을 날카롭게 비판했지만, <전체주의의 기원>은 극찬을 했다.

 

아렌트의 악의 개념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칸트의 급진적인 악의 차원으로 나타나지만,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죄는 진부하고 평범하며 오히려 어거스틴의 선의 부재개념에 가깝다.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드러나는 악의 진부함 내지 평범성은 타자에 대한 공감능력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사유할줄 모르는 어리석은 자에게 치료제는 없다 (칸트).

 

칸트의 급진적 악의 개념은 바울에게서, 악의 평범성은 어거스틴의 선의 부재와 큐피디타스에서 온다. 아렌트의 변증법적 역설은 사유할줄 모르는 무능함 즉 전체주의 사회 안에서 인지장애로 인해 좀비처럼 되어버린 부역자의 악의 평범함이 나타난다. 급진적인 악이 어떻게 전체주의 사회안에서 일상의 삶에서 평범하게 나타나는 가?

 

아렌트의 파시즘분석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현상학적 기본틀이다. 왜 홍위병은 자신의 폭력을 일상적인 평범한 것으로 보는가? 문화혁명이란 정치이념은 어떻게 군중개인의 의식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악한 행동을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와 동일시 하는가?

 

사회적 나르시즘은 어거스틴의 큐피다타스에서 오는데 아히이만의 큐피디타스에서 나르시즘과 급진적 악의 폭력성이 그의 일상의 삶에서 그리고 파시즘의 관료지배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나만 그런가? 남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책임은 명령을 내린 사람에게 있고 나는 성실하게 수행한 죄 밖에 없다. 파시즘의 진영논리가 만들어 놓은 '내로남불'의 무개념적 태도, 사유가 마비되어 더 이상 생각의 가능성이 정지된 상태를 말한다.

 

아렌트는 악의 문제를 보편적인 차원에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사례들에서 경험적으로 분석하며 현상학적으로 평가한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자신을 정치이론가로 이해했지, 정치철학자로 불리길 원하지 않았다.

 

같은 해 그녀는 <혁명론, On Revolution)에서 미국과 프랑스 혁명을 비교연구했다. 사후 그녀의 철학 유고는 <정신의 삶, The Life of the Mind>으로 발간되기도 했다. 1982년 그녀의 강의노트가 <칸트의 정치 철학에 관한 강연, LKPT>으로 출간 되었고, 이외에도 많은 정치철학에 관한 논문들이 있다.

 

그녀의 정치이론은 시민들의 활동과 참여에 기초하며 정치에 미치는 공동체의 역할에 주목한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아리스토텔레스, 몽테스퀴외, 칸트 그리고 토크빌의 시민사회의 정치 전통에 서 있다.

 

정치현안들은 단순히 정치 엘리트들이나 정당기구에만 위임되는 것이 아니라, 공론장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결정되어야한다. 이것은 시민을 정치주체로 파악하고 개인의 판단과 소통능력을 부각시키며, 정치적 효율성을 창출한다.

 

이런 점에서 아렌트는 하버마스에 앞서 소통이론과 정치적 활동의 중요성에 주목했고, 공론장과 시민사회 정치를 개념화했다. 하버마스와 다른 것은 칸트의 미학에 주목하고 구상력에서 나타나는 공동감각을 돌출한다. 모든 시민구성원의 동등한 정치적 견해를 공론장에서 돌출하고 정치의 제 3지대 즉 시민사회의 참여민주주의와 사회화된 도덕적 마음(시민미덕)을 국가정책에 피드백을 한다.

 

근대성과 대중사회

 

아렌트는 전통과 종교의 상실을 야기한 근대성에 대해 적잖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물론 근대성이 제공하는 의미와 정체성 그리고 가치를 하찮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근대성 비판에서 중요한 점은 공론장에서 개인의 행위와 언어의 상실에 있으며, 대중사회로 진입 때문이다. 대중사회에서—이전 개인이나 가사의 영역에 속했던 “노동하는 동물”이 우위를 차지하며, 고전적인 의미에서 정치주체로서 인간의 규정 즉 “정치적 동물”은 거의 실종된다.

 

더욱이 근대성은 익명의 노동과 관료행정의 시대이며 지배 엘리트와 여론조작으로 특징된다. 이것은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에서처럼 전제정부의 형태가 공포와 폭력으로 발흥하는 시대이기도하다. 아렌트의 근대성비판은 그가 경험한 나치즘의 전체주의와 더불어 스탈린 체제비판에 기초되며, 독일의 아우슈비츠와 구소련의 굴락 (강제노동수용소)은 더 이상 전통적인 개념이나 삶의 가치로 되돌아갈 수가 없게 만든다.

 

우리시대의 문제는 근대의 정치사건들의 영향으로 인해 과거의 도움없이 현실의 문제에 직면해야한다. 여기에는 버팀목이 더 이상없다. (Hannah Arendt: The Recovery of the Pubic World, 336)

 

아렌트에 의하면 근대성의 출현에서 두 가지 시기적 단계가 존재하는 데, 첫 번째 단계는 16세기에서 19세기이며, 이 시기에 콜룸부스의 신 대륙발견, 종교개혁, 망원경의 발명, 근대의 자연과학과 철학의 출현, 인간을 자연과 역사의 일부로 파악하는 입장, 그리고 경제영역의 팽창, 생산과 사회적 부의 축적 등이 식민주의와 더불어 나타난다. 여기에 세계소외와 사회적인 것의 출현이 조응한다.

 

두번째 시기는 20세기 초에서 시작하는 데, 지구소외와 더불어 자연과학과 기술발전이 지배하고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 규정된다. 근대의 첫 시기에 나타나는 경제영역의 확대와 제국주의는 공론장을 물질적 욕구의 충족을 위한 장으로 변형시킨다. 이러한 독점적인 변형으로 인해 노동과 사회 문화적인 일과 정치활동의 구별은 사라진다.

 

그러나 사회적인 것의 출현에서 아렌트는 경제영역과 동일시하고 가족이나 학교, 노조, 공공 지식인들의 역할 그리고 사회 제도등에서 나타나는 시민사회의 영역을 벙어하고 정치적 행의의 영력으로 재설정한다. 오늘날 사적영역은 공적영역과 분리되기 보다는 서로 연관되어있다. 정의와 동등한 권리를 위한 투쟁은 개인의 삶과 유리되지 않고 다양한 공론장의 영역과 계층에서 나타난다.

 

아렌트: 행위언어이론과 내러티브

 

아렌트에게서 활동개념은 그리스 철학의 실천(praxis)으로부터 온다. 실천행위는 만듬이나 생산 (poiesis)과 구분되고, 이것은 자유와 시민의 다원성에 연결되며 언어와 네러티브와 기억에 의해 설정한다. 실천안에서 상호주관성이 문화를 재생산하는 기본특질로 드러 난다. 소통행위 안에서 상호주관적인 생활세계가 형성된다. 이것은 생활세계의 출현형식을 말하며 공간적인 영역은 인간의 다수성을 통해 결정된다.

 

시간적인 의미는 인간의 출생성을 통해 표현된다. 모든 개인의 출생은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의미한다.아러한 출생성은 어거스틴의 자유개념에서 온다. 어거스틴의 출생성과 자유개념이 시민사회안에서 민주주의화가 되면서 마음의 습관이 사회화되면서 문화침전에 깔려있는 편견과 독단주의, 노동의 소외와 소유 개인주의를 비판하고 해방의 기획을 향해 나가면서 생활세계가 출현한다ㅡ출생성과 자유 그리고 발생론적 형이상학이 아렌트의 시민사회 공공선 거버넌스 정치이론이다.

 

그러나 하버마스의 생활개념은 체제를 비판하는 선험적 자리를 가지며, 국가지배방식과 경제시스템 그리고 매스 미디어의 이데올로기가 생활세계를 식민지화할때 소통 합리성과 합의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를 전개한다.

 

아렌트에게서 정치개념은 의미와 정체성에 결부되며 독창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정치행위는 더불어있는 인간의 삶의 방식이며, 여기서 소통과 토론 그리고 합의에 기초한 참여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근대의 시기에 출현하는 관료제나 정치 엘리트의 지배 방식과는 다르다. 그녀의 행위이론은 자유와 다수성 그리고 언어활동을 통한 정체성의 드러냄으로 특징되는데, 언어행위 내지 정치활동은 내러티브와 기억의 공동체와 관련된다. 인간의 행위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드러나며 인간의 다수성을 전제로 한다. 이것은 모든 정치적 삶을 위한 인간의 조건을 지적한다. (The Human Condition, 7)

 

활동적인 삶에는 세 가지 카테고리가 있는데, 노동(생물학적 조건), 일 (문화와 세계성의 조건)과 행위(정치적 실천과 인간의 다수성의 조건) 이다. 각각의 계기는 자율적이며 독립적인 기준을 갖는다. 노동은 인간의 생물학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기준을 가지며(노동하는 동물), 일은 인간의 유용함을 위해 세계를 적합하게 형성하는 사회문화적인 능력에 기초되며 (공작인, homo faber), 행위는 행위자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자유의 능력을 현실화하는 정치적 능력에 결부된다(출생성의 자유와 실천인). 정치실천은 인간을 활동적인 삶에 설정하며 자유의 중요성을 부각 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