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c Theology in Forum: Science, Civil Society, Life-World

카테고리 없음

세미나 강의: 한나 아렌트 (6)

content6462 2026. 1. 9. 01:10

식민지 관료제와 살해정치학

 

제국주의는 초기단계에서 제국들간의 경쟁과 투쟁으로 파악되지만, 이것은 고대나 중세의 제국의 이념과는 구분된다. 근대의 제국주의 개념에서 열강들간의 경쟁과 정치적 헤게모니의 팽창은 서로 맞물려있었고, 식민지 정복을 위해 강한 군사력과 기술의 진보 그리고 정치적 지배방식을 요구한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생산에서 지배계급이 국민경제의 협소함을 넘어서서 경제적 팽창을 시도할 때 발생한다. 부르주아지들은 경제적인 필요성으로 인해 정치영역으로 눈을 돌린다. 이들은 해외시장으로 팽창해나갈 것을 요구한다. 해외 정책의 궁극적 정치목적은 “팽창을 위한 팽창” 이라는 정치 슬로건으로 드러난다.

 

경제구조와는 달리 정치구조는 무제한적인 노동의 생산성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대로 팽창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자본과 폭력적인 군중의 연계가 드러나는데, 국내와 해외정책이 결합되고 민족을 제국주의화 하면서 해외영토를 약탈하고 착취되는 백성들의 삶을 영구히 저하시킨다(The Origins, 155).

 

어째튼 연방국가는 무제한의 성장과 해외 식민지 지배와 팽창에 적합하지가 않다. 연방국가가 식민지 지배국가로 출현할 때 그것은 우월한 민족의식을 고취한다. 프랑스의 경우 알제리는 법적으로 프랑스의 변방으로 편입 되었지만, 프랑스의 법을 아랍민족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슬람의 법이 존중되었고, 아랍시민의 신분이 허용되었다.

 

이러한 식민주의 지배의 변종은 영국의 제국 형성에서도 지배방식으로 나타난다. 대영제국은 아일랜드를 파괴하고 편입시킨 적이 없다. 아일랜드는 지배 신분이 허용되고 대영제국의 시민으로 환영되었다. 식민지 지배방식에 나타나는 변종으로 이식된 정치구조는 모국으로서 대영제국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ibid., 127). 그러나 식민지 국가의 문화와 종교 그리고 법에 대한 침해는 자제한다

 

물론 20세기의 중엽에 프랑스의 제국주의 특징은 고대의 로마제국의 방식을 추종하기도 한다. 프랑스는 세계로 전진하며 프랑스 문명의 혜택을 유포한다. 이들은 해외 자산을 국가기구로 편입시키고 식민지 백성은 프랑스 문명을 나누는 형제와 또한 프랑스의 법과 지배를 추종하는 백성으로 취급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식민지 출신의 시민이 프랑스 의회에서 활동할 경우 나타나지만, 해외 식민지에대한 잔인한 착취에 기인한다. (ibid., 129) 이것은 전형적인 프랑스의 문명선교의 성격을 말힌다. 반면에, 영국이 지배방식은 보다 경제착취와 고갈이론에 있다.

 

그런가하면 아프리카 분할정책에서 자유콩고 국가는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에 의해 대학살로 막을 내리기도 했다. 이것은 제국주의와 관료지배가 어떻게 학살정치로 드러나는 지 여실히 보여주는 실례이기도 하다. 이것은 요셉 콘라드의 소설 <어둠의 마음>에서 폭로되기도 했다. 경제 고갈정책 이후 흑인들에대한 신체절단과 대학살이 자행되었다. 1890년 이천만에서 사천만의 콩고 원주민들은 1911년 팔백오십만으로 줄어들었다. 여기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레오폴드 2세의 식민지 관료지배와 신체학살 정치에 기인한다 (ibid.,185).

 

인종문제는 제국주의 지배방식에 깊숙히 관련되며, 이것은 아렌트의 접합이론—자본과 권력축적의 접합에서 드러나는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의 연계—의 정당성을 입증한다. 정착 식민지의 경우 본국에서 파견된 관리들에게 권력과 권위가 주어진다. 이들은 식민지에서 주인의 역할을 하지만 식민지 백성에게 새로운 사회 제도나 질서를 창조하지 못하게 한다.

 

아렌트와 다윈주의

 

아렌트에 의하면 다윈주의는 19세기에 영국에서 공리주의에 기초한 정치가들의 수중에 있었고 반식민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허버트 스펜서는 진화의 철학자로서 사회학을 생물학의 부분으로 다루었고, 자연선택은 인류의 진화에 혜택을 주며 영구평화로 귀결된다고 보았다.

 

정치적 영역에서 다윈주의는 두 가지 주요한 개념을 제공했는데, 그것은 생존투쟁과 적자생존이다. 적자생존은 스펜서의 용어이며 다윈이 <종의 기원> 5판에서 수용했다. 동물적인 삶에서 진화된 인간은 새로운 우생학을 시작했다. 적자생존의 원리로는 사회의 상위층은 궁극적으로 적합한 자이지만 어제의 적자가 내일에도 적자가 될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우생학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넘어서게 하는 과학적 이론이 되었다. (ibid., 178 -9)

 

나치즘이 전체주의 정책의 과정에서 인간을 짐승으로변화시키기 전, 이미 독일에서 다윈주의자들은 유전자를 토대로 인간을 신으로 만들려고 시도했다. 초기 진화론주의자들이나 다윈주의자들은 인간의 천사적인 미래에 대한 강력한 신념이 있었다.

 

귀족제는 정치제도가 아니라 자연선택의 귀결로 간주되었고, 선택된 인종적 유산은 유전적인 천재성으로 귀결된다고 믿었다. (ibid., 179) 영국에서 다윈주의와 우생학은 귀족이 아니라 중산층의 열망에 엘리트적인 인종사고를 불어 넣어주었다.

 

그러나 아렌트는 사회진화론을 다룰 때 이것이 존 슈트워트 밀의 개인주의적 공리주와 더불어 자유방임주의 자본주의가 출현하며, 인도의 식민지배에서 어떻게 유럽중심적인 인종적 사고와 관련되는 지 충분한 분석을 하지 않는다.

 

다윈의 <종의 기원, 1859)이 출간된 후 스펜서의 사회 진화론은 미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백인우월주의에 토대를 제공했다. 물론 존 설리반이 1945년 텍사스 병합에서 “명백한 운명”을 유포했을 때 이것은 인종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이데올로기화된 것이었다. 스펜서는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옹호했고, 개인들은 생존을 위해 자유롭게 투쟁하며 오직 적자만이 생존하는 것이 자연의 사물의 질서로 주장했다.

 

연약한 자나 가난한 자를 보호하는 국가정책의 개입은 자연법을 위배하는 것이며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비적합자의 생존을 돕는 것은 오히려 인구의 변질을 가져온다. 진화와 진보는 서로 연관되며, 생존투쟁과 적자생존은 사회에서 축적되는 진보를 통해 합리성과 도덕성의 발전에 기여한다. 인간의 역사는 타자의 희생위에 세워지는 적자생존과 개발이다. 결국 진보의 역사는 야만의 문서를 담고있다.

 

스펜서의 미국인 제자 윌리엄 숨너 (1840-1910)는 역사에 대한 진화론적 견해를 수용하고 예일대학의 첫 번째 사회학 교수가 되었다. 19세기 말 사회 진화론은 숨너를 통해 학계에서 부동의 자리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인디언 원주민 차별과 흑인 인종분리 정책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이것은 희생자를 비난하는 문화 인종이론으로 발전되었다. 미국의 인종주의에서 희생자들과의 연대를 옹호하는 발터 벤야민의 아남네시스의 입장은 여전히 중요하다. (McCarthy, Race, Empire, and the Idea of Human Development, 76-7. 102)

 

인종적 사고와 부르주아 정치지배

 

어째튼 아렌트에게 인종적 사고는 계급적 사고와는 달리 아시아나 아프리카 또는 라틴 아메리카를 대하는 유럽중심적인 어두움을 드러낸다. 결국 이것은 인간성에 기초된 모든 민족들의 평등과 연대를 거절하고 비유럽인들의 파괴를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된다. (The Origins, 61)

 

본국에서 독점적인 집중과 자본 축적 그리고 폭력의 행사는 식민지 관리들에게 파괴의 대행인으로 지위를 부여하며, 전체주의 팽창은 식민지 백성과 국가를 결단내는 권력으로 드러난다. 권력은 여기서 정치적 행위의 본질이 되며 정치적 사고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이러한 권력은 봉사해야할 정치 공동체와는분리되며, 지배와 권력의 팽창이 유일한 목적이 된다. 부르주아지는 연방국가의 정치에서 오랫동안 배제되고 공적인 업무에 별다른 관심이 없지만, 이제 제국주의 정치로 인해 지배계급으로 등장한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마지막 최고의 단계 (레닌)가 아니라 부르주와지의 정치지배의 첫 번째 단계이다 (ibid., 138)

 

아렌트의 담론—제국주의는 부르주와지의 정치지배의 첫 번째 단계—는 포스트 콜로니얼의 조건에 대한 통찰을 함축한다. 자본축적이 국가권력에 의해 세계체제로 확산될 때, 시민사회는 신제국주의적 논리에 의해 침투되며 사회문화의 계층화와 더불어 신분과 계급은 분화가된다. 여기에 이민자들의 문제와 인종문제가 가세된다.

 

결국, 제국주의는 민족국가의 토대를 약화 시키고 국가간의 경쟁을 도입한다. 국가사업과 제국주의 경제에 관여한 자본가들로 인해 유대인의 재정과 부는 밀려나기 시작했고, 군주제에서 누리던 재정지원과 자문역할을 통한 영향력의 몰락은 이들을 보편적인 증오의 대상이 되게했다 (ibid., 15). 부르주아지 세계지배형식에서 국내의 사회문화계층에서 밀려나간 인종그룹이나 정치적으로 의심스러운 그룹에대한 차별이나 콘트롤은 파시즘적 속죄양 형태로 나타난다 (르네 지라드). 이것은 희생자를 비난하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준다.

 

이러한 제국주의는 오늘날 포스트콜로이얼 조건 (착취, 침투, 분할)에서 여전히 다국적 기업과 신체정치학과 더불어 인종주의와 국지전에서 서구중심의 지배방식을 구축해내간다. 이것은 오늘날 후기 자본주의 체제에서 드러나는 변종의 지배 정치학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