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는 서사시로서 단순한 운율과 낭송으로 이어졌는데, 대한민국의 판소리에 견줄 수 있다. 그러나 7세기 중반에 서정시가 발전되면서 운율과 악기반주가 곁들여졌다. 5세기 민주정으로 들어오면서 서사시는 서정시와 악기와 합창과 융합되면서 배우들의 행위와 가면과 복장이 나타나고, 평민들을 위한 비극의 드라마로 발전되었다.
534년 경 아테네의 아고라에 있는 디오이소스 제전에서 비극이 처음으로 올려진 것으로 보인다. 사티로스로 분장한 사람들이 종교적 제의의 노래를 불렀는데 사티로스는 디오니소스 신에게 받쳐진 숫염소였다. 비극은 '숫염소의 노래'를 의미하며 원래 종교제의였다. 아테네의 참주 페이스트라토스는 민중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시골에서 열리던 디오니소스 제전을 아테네의 아고라에서 3-4일 동안 성대히 치르고, 유명한 비극 경연대회를 개최했다.
헤겔과 비극작품
헤겔은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최상으로 여겼다. 헤겔의 미학의 현상학은 예술작품에 대해 기술적이며 동시에 이념형을 기초로한 내재적 비판을 담는다. 그것은 규범적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적 목적론적 사유를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정신의 자유와 삶으로 변형시킨다. 이것은 헤겔이 근대의 예술작품에 요구하는 것일 수 있다. 우리시대의 예술은 인간의 삶과 자유의 풍부함을 제시하고, 이러한 표현에서 관람자나 독자는 고향을 느낄 수 있어야한다.
헤겔에게서 서사시의 목적은 쾌략을 주는 것 보다는 윤리적 딜렘마에 대한 반성에 주어진다. 소포클레시스의 <안티고네>에서 헤겔의 반성은 이러한 미학적 태도를 보인다. 헤겔에게 안티고네의 죽음은 그녀의 심정윤리에 기초되며, 그녀는 신의 법을 보존한다. 이것은 인간의 법 즉 실정법을 대변하는 크레온 왕과 대립한다. 안티고네의 법은 문서화되지 않으며, 기원은 알려지지 않는다. “이러한 법은 오늘이나 어제가 아니라 항상 살아왔다. 아무도 언제 그것이 나타날 지 모른다.” (Hegel, Phenomenology, 248).

이러한 법은 우리와 더불어 살면서 언제 우리를 만날 지 모른다. 헤겔은 신적인 법과 인간의 법을 변증법적으로 매개하려고 한다. 사회적 관계에서 이항의 대립 또는 이율배반이 매개를 통해 승화되지 않을 때, 다시말해 인정이 사라지는 곳에서 상호파괴가 나타난다. 인륜적 질서가 오로지 실정법으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비극과 죽음의 현상들이 출현한다.
이미 이러한 정치적인 비극을 소포클레스는 당대 페리클레스 민중 선동민주주의에서 보았고 페리클레스를 크레온 왕으로 비판했다. 비극에서 당대의 정치적 위기와 선동이 반영된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심정 윤리로 인해 399년 민중재판에서 사형을 당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안티고네>에서 그녀의 행위와 죽음에서 동정과 슬픔을 느끼면서 윤리적으로 재현할 것이다. 비극은 미메시스와 카타르시스를 동반하며 플롯의 구성에서 창조성이 나타난다. 이러한 미메시스적 창조성이 비극작품안에 살아있고 관객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비극의 목적은 나의 삶에서 미메시스를 통해 주어지는 쾌락을 즐기는데 있다. 그러나 플라톤은 <국가>에서 미메시스적 감정이입을 비판했다. 플라톤에 의하면 호메로스나 다른 비극의 시에서 영웅들의 비극적인 삶에 공감하고 가슴을 치는 애통함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우기 현실세계에서 재현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X 605 c-d).
반복과 회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비극의 목적은 연민과 두려움을 산출하는 데 있다. 이것을 위해 플롯구성이 가장 중요하며 배우들의 연기나 대화는 이차적이다. 플롯구성에서 사건들은 예기치않는 비극으로 이어지는 역할을 한다 (1450a29-31).이것은 보다 역사의 개별사례들을 열거하는 것보다 더 철학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비극의 작품에서 철학적 의미를 추론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적 추론은 드라마의 행동에서 개별적인 인물들의 사건과 삶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강렬한 감정의 반응을 일으킨다. 관객은 고통이나 또는 폭력이나 죽음에 반응하며 단순히 미메시스를 넘어 삶의 의미를 반추한다. 이것은 감정의 카타르시스로 나타나며, 비극은 이러한 행동과 감정에 대한 미메시스다 (6, 1449b 25- 28),
비극과 서사시가 처음에는 차이가 없었지만 비극의 요소가 사사시에 모두 있지 않다. 비극은 배우의 연기를 통해 연민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감정의 방식을 담는다. 비극의 모방은 대사와 노래를 통해 전개되지만 플롯은 사건이나 사상이나 행위의 모방등으로 나타난다. 비극의 구성요소는 시각적 요소, 노래와 대사, 플룻, 성격, 사상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행위나 사건을 구성하고 모방하는 플룻(스토리 구성)이다.
카타르시스의 다양한 차원에서 연민과 두려움은 관객을 사로잡는 사건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연민은 오이디푸스왕의 재난과 운명에 같이 슬퍼한다. 두려움은 단순한 공포감이 아니라 연민에 연결되며 무엇이 삶을 파괴하는지 냉정하게 판단한다. 연민과 평가는 감정을 정화하는 방식이며 긴장된 관객의 마음에 연민과 공포로부터 총제적 해방을 일으킨다. 이것은 비극에서 나타나는 탈존형식 (엑스타시스)이다 (Gadamer, Truth and Method, 130-1).
이러한 탈존형식은 절제된 윤리적 차원과 관객들의 공동체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것은 나의 감정안에 담겨져있는 상처나 해결되지 않은 응어리짐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며, 인간의 조건애서 드러나는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것을 해명한다. 이라한 동정과 연민은 사회적인 삶에서 중요한 윤리적 감정에 속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와 카타르시스의 관계는 헤겔의 반성에서 드러난다. 물론 헤겔은 미메시스보다는 비극적 인물에게 나타난 사건을 철학적으로 반성하고 역사화한다. 헤겔은 말한다: “이러한 법은 오늘이나 어제가 아니라 항상 살아왔다. 아무도 언제 그것이 나타날 지 모른다.”
<법철학, 1821> 서문에서 헤겔은 미네르바 (여신 아테나)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서야 날아 오른다고 쓴다. 참된 지혜와 지식은 이카루스처럼 태양에 가까이에 다가가서 그것을 체험하는데 있지 않고 신중한 반성에서 드러난다.
헤겔에 의하면 안티고네나 아카루스의 비극은 역사적으로 회귀하며 절대자유를 구가한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에서 출현했다. 인간의 노동과 역사적 과정에서 나타나는 노동과 언어 그리고 정신의 실현을 통해 드러나는 사회, 문화를 외면한 채 지배자의 하늘을 향한 비상은 결국 추락한다.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에서 헤겔은 지배자의 귀족의식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예속된 자들의 삶을 인정하지 못하는 귀족의식과 군주제는 이카루스와 같은 비극을 경험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에서 자코뱅의 독재는 절대자유를 형해 비상했지만 혁명에 같이 관여했던 산퀼로텐과 같은 그룹들에대한 살해정치로 현상했다. 안티고네의 심정윤리는 역사에서 실정법에 의한 억압과 살해로 반복하면서 출현한다.
이러한 공포정치나 파시즘을 넘어서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는 신중한 반성인 절대지에서 가능할 것이다. 절대지는 예속된 자들의 자유와 해방에서 즉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용서와 화해에서 출현한다.
미학의 사회학: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들>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에술과 신화의 세계는 미학의 역사 사회학적 차원을 탈각시킨다. 비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이스킬로스는 <페르시아인들>에서 480년 살라미스 해전을 기반으로 자신의 비극 문학을 기술했다. 아이스킬로스는 490년 마라톤 전투에 참여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심지어 그의 묘비명에는 비극작가가 아니라 마라톤 전투에 참여한 자랑스런 시민으로 기록되어있다.
아이스킬로스는 472년 비극경연대회에서 <페르시아인들>을 포함한 3부작을 공연하여 우승을 차지했다. 사실, 그리스 비극문학은 단순히 신화에서 영웅들의 이야기를 넘어서서 역사적인 전쟁에서 나타나는 참화와 고통 그리고 비극을 크세르세스의 오만의 관점에서 다룬다. 비극문학은 단순히 신화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운명의 비극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이 아니라 인간의 전쟁의 참화를 심도있게 다루는 사회학적 반성을 내용을 담고있다.
다른 한편 페르시아의 3차 침공에서 아테네 시가지와 아크로폴리스는 패르시아군의 약탈로 굴욕을 당한 처참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아테네의 정체불명의 상황에서 살라미스 해전에서 아테네의 운명을 건 한판의 전쟁은 향후 아테네의 항금시대를 열었준 계기가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들>의 공연을 위해 제정적 지원을 해준 사람은 당대 20대 중반의 페리클레스였다. 페리클레스는 비극공연에 담겨져있는 아테네의 영광과 정치적 의미를 간파하고 있었다. 페리클레스가 권력을 잡은 후 페르시아군의 방화로 불타버린 아크로폴리스의 신전을 재건하고 파르테논 신전을 건립하면서 동맹국의 금고를 무리하게 유용했던 것도 역사적으로 이런 배경에 서 있었다.
이러한 미학의 사회학은 니체의 디오니소스 태도를 수정한다. 니체에 의하면, 당대 비극작품이나 드라마가 카타르시스를 통해 도시국가에서 윤리적 차원을 제공하고 탐욕스런 왕들에대한 비판을 거절한다. 그러나 니체와는 달리 비극의 탄생은 단순히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사티로스의 합창이 아니라 아테네인들이 서 있던 역사 사회적인 삶의 자리에 뿌리 박고있다.
예술과 문학의 역사 사회학은 비극문학을 두텁게 기술한다. 아이스킬로스나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새로운 장르는 합창보다는 시각적인 요소가 가미된 배우들의 역할이 부각되며 에우리피데스는 신들이 나타나는 기계장치를 무대에 설정하기도 했다.
니체의 관념론: 헤겔의 접합
니체는 실러의 <메시나의 신부>의 서문에서 합창에 대한 통찰을 높게 평가했다. 합창은 비극의 세계로부터 관객을 단절시키위해 세운 살아있는 장벽과도 같다. 합창의 도입부는 예술의 모든 자연주의에 저항하는 전쟁을 선포한다.
그러나 니체의 시대는 쉴러나 괴테를 사이비 관념론자들로 비판했다. 자연스러움과 실제적인 것에 대한 근대예술은 바이마르 시기에 괴테나 쉴러의 고전주의에서 나타나는 무시간적 영원한 이념을 비난했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의 예술은 모든 관념론의 정반대의 극단 다시말해 밀랍으로 만든 박물관처럼 되버릴 수가 있다 (ibid., 60).
니체에 의하면 그리스의 사티로스 합창은 하나의 관념적인 영역이다. 이러한 기반에서 비극은 발전하고 실제적인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다. 디오니소스의 합창자로서 사티로스는 제의와 종교에 의해 허용되었고, 관객들은 사티로스의 합창에서 위로를 받고 자연의 근본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경험을 했다. 이것은 디오니소스적 비극이 제공하는 가장 직접적인 효과였다. 이것은 강력한 일치의 느낌을 향한 길을 개방하며, 관객을 자연의 중심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을 디오니소스 제의에서 행해진 비극과 사티로스의 합창에서 보았다. 그러나 아이스킬로스나 소포클레스에게서 합창은 시각적인 배우의 연출로 이행되었다.
비극의 기원은 사회 정치적 발전에서 나타나며 디오니소스 제전은 지배 권력자들에 의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더우기 당대 돈/경제의 발전을 무시할 수 없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성의 뵨증법에서 로고스가 불안에 존재하듯이, 돈은 대립적인 것들의 일치를 보편적으로 확증해주었다. 헤라쿨레이토스의 변증법은 피타고라스의 무한과 유한의 대립을 일치시키는 일저로 통합된다. 아이스킬로스의 메타포에서 헤라클레이토스의 대립의 일치가 나타는데 오기서 교환과정(물/불)을 매개하는 것은 당대 돈/경제를 배경우로 한다.
니체와 헤라클레이토스
나체는 <Philosophy in the Tragic Age of the Greeks, 1873)에서 기원전 500년 경 활동한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에 주목한다. 니체는 이른바 고대 그리스 "르네상스" 시기에 이오니아에서 발전된 철학과 문화가 동방의 세계와 교류하고 있음 잘 보았다. 헤라클레이토스 곁에 조로아스터가 있다. 엠페도클레스 곁에 이집트인들이 있으며, 아낙사고라스가 유대인들과, 그리고 피타고라스가 중국인들과 더불어 있다. 그리스인들은 살아있는 다른 문화들을 흡수하고 배우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니체는 독일인들이 그리스인들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인들은 이웃의 문화를 흡수하고 도약으로 삼으면서 보다 고결한 문화를 창출해야 한다. 그리스인들은 꺼지지 않는 지식의 열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삶의 모든 가치들을 위해 유용화했다.
이들은 철학적 사유의 원형을 만들어냈다. 그리스의 토양에서 일곱현인의 제정은 헬라 이미지의 특징에 속한다. 철학은 삶과 지혜에 관련된다.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는 되어감에서 영원한 물결의 박동과 사물의 리듬을 부각시켰다. 현재의 심판이 아니라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정당성이 나타난다. 니체에 의하면, 헤라클레이토스는 전혀 다른 두 세계의 이원화를 거절한다. 이것은 밀레토스의 아낙시만더와 다르다.
아낙시만더는 사물의 근원이 있는 곳에 모든 것은 필연성에 따라 사라진다. 그러나 시간의 질서에 따라 부정의는 배상되고 판단되어야한다. 원형적 존재의 불멸성과 영원성은 무한성이 아니라 일정한 특질의 비어있음에 있다. 무한성은 비움이며 모든 존재의 자궁이며 인간의 언어로 부정으로 표현된다. 니체는 이것을 칸트의 물자체로 보았다 (Philosophy in the Tragic Age of the Greeks, 105).
그러나 아낙시만더와는 달리, 헤라클레이토스는 되어감 이외에 다른 것을 보지 않았다. 동일한 강물에 나는 두번 둘어갈 수 없다. 모든 것은 영원히 자체안에 대립을 가진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되어감과 사라짐의 이항대립에서 보지만 여전히 연합된다. 바다는 순수하지만 오염되어있다. 꿀은 달지만 또한 쓰다. 세계는 혼합된 음료제와 같으며 발생하는 모든 것은 이러한 갈등에 따라 영원한 법과 정의가 드러난다. 모든 것이 불이라면,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우주적 불 (일자)은 다수이다. 세계는 불이 자신과 더불어 사물의 생성과 변형과 파괴에 관계하듯이, 제우스가 게임하는 세계이다.
쇼펜하우어는 자연의 모든 세계에서 이러한 갈등을 보았고 삶의 의지의 충동욕망에 기초한 자기해리 현상에서 확인했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대립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난 당했다. 이성의 법정 앞에서 헤라클레이토스는 중대한 범죄자가 되었다.
헤겔이 헤라틀레이토스-아리스토텔레스를 접합하고 역사적 과정에서 정신의 자기운동으로 파악했다면, 니체는 생성에 주목하고 존재의 영원회귀로 간다. 여기서 니체는 아낙시만더를 다시 염두에 둔다. 존재의 다수성은 되어가고 사라지지만, 그것은 도덕적 현상이다. 시간의 영원성이 흐르고 사라진 후에 새롭게 갱신되는 과정의 흐름은 어디서 시작하는가? "영원한 생성은 기원을 오로지 영원한 존재에 둔다"ㅡ되어감이 존재로 귀착되는 영원회귀는 아낙시만더에게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인간은 비합리적 동물이며, 이들의 삶에서 우주적 이성의 법이 실현된다. 사람들은 로고스스를 인정할 의무가 없다. 왜냐하면 로고스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니체의 해석은 수용되기 어렵다. 변화의 흐름과 일치를 지배하는 것은 제우스 /로고스이다. 신의 마음에서 볼 때 만물의 변화와 대립은 문제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선하고 공평하며 정의롭다. 영원성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지각은 불완전하다. 나의 말이 아니라 제우스의 말에 경청하는 것이 지혜롭다.
모든 것이 불의 변용이고 변화의 흐름 가운데 있다면, 이러한 변화와 대립의 일치는 로고스/제우스에게서 찾아져야한다. 이러한 제우스의 능력은 모든 현상들에서 나타나며 발생하는 것은 모두 선하다. 제우스/로고스는 생으로 또는 운명으로 불린다.
헤라틀레이토스에게 지식의 중요성이 거절되는 것이 아니라 관점주의와 도덕적 가치를 가지며 선한 법들은 우주의 비판적 원리를 반성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헤라클레아토스를 지각의 현상학의 아버지로 간주한다.
왜 불은 항상 불이 아닌가? 왜 다른 모습들로 나타나는가? "그것은 게임이다. 병리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도덕을 만들지 말라." 세계는 에온의 아름다운 순진한 게임이며, 예술작품에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성과 변화의 통찰이 담겨있다.
만일 우주적 로고스가 자연에 펀만하고 초월성이 없다면 스토아주의로 통합될 수 있다. 그러나 니체는 여기에 저항하고 헤라툴레이토스-아낙시만더의 접합을 디오니소스의 원초적 생과 본능충동에서 예술화했다. 이러한 생리학적 욕망의 틀에서 니체는 비극의 탄생을 사티로스의 합창에서 보았다
그러나 니체는 합창이 부유한 계층에 의해 구미에 따라 조작된 것울 보지 못했다. 더우기 헤라클레이토스 (교환가차와 돈/경제)와 그리스 비극의 연관성에 주목하지 못했다. 니체에게서 디오니소스적 비극과 사티로스 합창은 모든 진정한 비극이 남겨준 형이상학적 위안이다. 이것은 삶을 바닥에서 파괴되지 않은 체 강력하고 쾌락을 주는 것으로 남게한다. 니체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형이성학적 위안을 담고있다
니체와 형이상학적 위안
니체의 형이상학적 위안은 사티로스의 합창에서 명료하게 표출되며, 세대와 역사를 거치면서 영원히 동일한 것으로 나타난다. 심오한 헬라인은 비극에서 불교적인 의지를 무화하는 위험에 처하지만, 사티로스의 합창 안에서 위안을 발견하고 예술에의해 구원된다. 헬라인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생에 의해 구원된다 (ibid., 61).
니체에게서 사티로스의 합창은 그리스의 예술을 구원하는 행동을 담고있다. 예술은 의지가 무화가 되는 위험의 순간에 마법사처럼 찾아와 인간의 삶을 치유하고 구원한다. 이것은 비극에서 디오니소스적 경험을 말하며 햄릿은 디오니소스적 인간에 속한다 (ibid).
니체가 그리스 고전극의 재생을 위해 노력한 쉴러의 예술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심지어 형이상학적 위안을 사티로스의 합창에서 파악한다면, 그는 헤겔과 그리 먼 거리에 있지 않다. 디오니소스적 경험이 세대를 거쳐 영원히 반복하면서 삶을 치유하고 구원한다면, 그것은 형이상학적 위안에 속한다. 그러나 헤겔의 철학적 반성에서 비극에서 드러나는 갈등과 대립은 우리의 삶안에서 들어와 있고 언제 출현할 지 모른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니체의 통찰은 전통철학을 파괴했지만 진리는 배타적으로 과거에 존재한다. 고대 예술이 마술이나 왕들의 즐거움에 예속 된다고 해서 마치 이것을 예술의 원죄나 굴욕처럼 여겨서는 안된다. 그러나 헤겔이 예술의 죽음을 말할때. 예술은 역사의 산물에 기인한다. 예술의 본질은 예술의 삶과 죽음에서 평가할 수 없다. 예술의 본질은 되어감과 이행에 있고 예술의 반란은 목적론적으로 설정되며 객관성을 향한 태도 즉 역사적 세계를 향해있다. 예술의 본질은 예술에 대한 반란으로 출현한다 (Adorno, Aesthetic Theory, 3)
이 지점에서 나는 아도르노의 니체와 헤겔의 평가를 사회학적으로 접합한다. 니체는 전통철학을 뒤집었지만 그에게 여전히 예술의 위안의 형이상학이 있고, 예술은 영원히 인간의 삶에서 반복되며 구원을 한다. 헤겔에게서 예술의 죽음은 그의 시대에 비극의 죽음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비극의 죽음은 로마의 세계로 이행하면서 출현했다. 그러나 비극의 진리는 삶에서 부딪치는 위기와 파국에서 반복된다. 다름에대한 인정이 없는 형이상학적 위안은 예술의 사회적 관계를 외면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이며 정치적 동물이다. 헤겔에 의하면 선과 악의 대립이 비극의 탄생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선의 형식들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데서 오는 충돌 때문이다.
안티고네와 카산드라
니체는 <비극의 탄생> 4절에서 안티고네와 카산드라에 대한 흥미로운 생각을 말한다. 니체는 안티고네의 해석에서 헤겔과 갈라선다. 니체에게서 안티고네는 아폴론의 원리를 대변한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의 딸이며, 그녀의 외삼촌 크레온은 테베의 왕이 되었다. 안티고네의 두 오라비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테베의 정권 정당성을 두고 전쟁하다가 둘 다 죽었다.
크레온은 애국자 에테오클레스의 장레식을 성대히 치루어주었지만 반역자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들에 두어 야생동물의 먹이감이 되도록했다. 그러나 혈육의 정으로 인해 안티고네는 오라비의 시신을 거두어 종교적 관습에 따라 장례를 치루어주지만, 이에 격분한 크레온은 그녀를 동굴에 갇두어 목매어 자살하도록 명령했다.
물론 안티고네는 고결한 여성이여 미덕과 혈육의 정을 양심에 따라 실정법을 어기면서 행동했다. 과연 이런 심정윤리가 아폴론적인 에로스와 어떤 연관을 갖는 지가 분명하지가 않다. 그러나 니체의 이상형은 카산드라이다. 카산드라는 트로이 왕 프리암의 딸이며. 트로이의 여사제이지만, 아폴론은 그녀에게 예언능력을 선물로 주면서 유혹했다. 그녀는 아폴론 신이 불멸하지만 자신이 인간으로서 늙고 추해졌을 때 버림받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폴론의 사랑을 거절한 이유로 저주를 당했다. 카산드라는 트로이군에게 목마를 도시 안으로 들여오지 말 것을 경고했지만, 그녀의 염려는 무시 당하고 결국 트로이는 몰락했다. 전리품을 나누는 과정에서 아가멤논의 차지가 되지만 아가멤논이 아내의 정부에 의해 살해당한 후 크산드라 또한 그녀의 부인에 의해 칼에 찔려 죽는다.
카산드라가 디오니시스적 유형에 속하는가? 바람둥이 호색한 아폴론의 사랑을 지혜롭게 그러나 용감하게 거절해 비운의 최후를 마친 그녀는 오히려 안티고네처럼 심정윤리의 상징이 아닌가?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아폴론의 에로스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이것으로 인해 니체는 <심포지움>의 에로스적인 소크라테스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니체는 호메로스에 저항하여 서정시인 아르킬로코스 (680-645)를 부각시켰다. 아르킬로코스는 요정의 세계를 섬기는 전사의 시인이다. 그는 자신의 거치른 삶을 통해 격한 감정과 경험을 노래하고 심지어 사회혁명의 요소를 담고있다. 그는 중앙 에게해에 속하는 그의 고향 파로스 섬에서 디오니소스적 제의에 중심인물이었다. 니체는 아르킬로코스의 서정시가 근대의 미학에 포함되어야하며, 이러한 시에서 객관적인 예술가는 최초로 주관적인 예술가를 만난다고 본다 (Nietzsche, ibid., 54)
이러한 분류는 헤겔의 1835년 미학강연에서 나타난다. 헤겔은 서사시의 객관예술과 서정시의 주관예술을 구분했다. 그러나 헤겔은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세계를 서정시의 주관예술로 승화하기보다는 낭만주의 예술에서 설정했다. 그러나 헤겔은 호메로스와 아테네의 비극의 원리를 추종하지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이나 사티로스 합창극을 추종하지 않는다.
디오니소스적 영원회귀는 니체처럼 미학이나 심리학이 아니라 헤겔에게서 역시적 사건에서 반성된다. 헤겔은 이러한 영원회귀의 역사적 비극을 부정하고 인정에 기초한 절대지에 주목한다. 헤겔이 시스템적 사고는 디오니소스적인 야만과 잔인한 광란을 부정하지만 절대지 안에서 안티고네의 비극을 하늘의 법인 심정윤리로 존중한다. 헤겔은 언티고네의 양심과 야만적인 디오니소스적인 크레온의 실정법을 이항의 대립에 방치하고 끝 없는 투쟁으로 가지 않는다. 비극은 매개와 인정을 통해 화해의 카타르시스에서 해결된다.
이와는 달리 니체는 사티로스의 합창에서 형이상학적 위안을 찾는다. 이러한 예술의 형이상학은 인간의 삶을 치유하고 구원하면서 영원히 반복 한다고 말한다. 니체의 동일한 것들의 영원회귀는 역사 철학적으로 읽기는 어렵다. 니체에게 역사란 생을 위해 실용적인 유용성을 가져야하며 생은 디오니소스적 신화에 뿌리박고있다.
들뢰즈가 해석하는 것처럼, 디오니소스적 영원회귀는 차이와 반복의 원리이며, 회귀하는 것은 동일자가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순간에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 삶의 운명을 사랑하면서 차이를 재생산하는 힘에의 의지로 볼 수 있다 (들뢰즈 <니체와 철학>, 98).
현재는 지나간 것이지만, 동시에 도래할 것이며 나의 존재와 더불어 공존한다. 그러나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은 생이 인간의 역사에서 지속된다. 이러한 생을 위한 역사의 유용성을 들뢰즈는 니체의 사유에서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
결론적 반성
니체는 헤겔과 먼 거리에 서 있다. 헤겔의 신죽음은 예수의 십자가를 지적하고 화해를 말한다. 그러나 니체의 신죽음은 화해가 아니라 삶의 긍정하고 운명애로 부각된다. 그러나 헤겔과 니체의 공감대는 싈러와 괴테에게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비극에서 사티로스극에 대한 평가에서 갈라선다. 그러나 예술의 삶의 방식은 이항의 대립으로 파악되기 어렵다.
헤겔의 내재적 비판의 이념형은 생활세계와 더불어 역사 사회적 조건에서 예술의 담론과 물질적 관계 그리고 권력의 네트워크를 검토하는 계보학적 태도로 발전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헤겔을 계보학적으로 그리고 사회학적으로 보충할 수 있다 (막스 베버와 푸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