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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강의: 한나 아렌트 (3)

content6462 2026. 1. 9. 00:38

영화 로스차일드가문

 

1938년 11월 나치 돌격대에의해 자행된 <수정의 밤>이 일어나고 유대인 상점과 건물 그리고 회당이 파괴되었다. 나치는 반유대주의 정서를 독일전역에 유포했지만 대부분 양식이 있는 시민들은 여기에 동조하지 않았다. 요셉 괴벨스는 1940년 7월 나치 독일에서 로스차일드 영화를 상영했다. 유대인 로스차일드 가문이 나폴레옹 전쟁시기에서 행한 부패한 사기행각을 그린다.

 

헤세의 선제후 빌헤름 1세는 프랑스가 지원하는 라인연방에 가입하길 거절했다. 나폴레옹의 위협으로 인해 선 제후는 프랑크푸르트의 마이어 로스차일드 (1744-181 2)에게 영국으로부터 받은 육십만 파운드의 국채를 요구하지만 거절 당했다. 로스차일드는 막대한 이자를 받고 스페인에서 나폴레옹과 전쟁하는 웰링톤 군대를 지원하는 데 자금을 사용했다.

 

1815년 쿠데다가 일어나자 영국에서 금융업을 하던 로스차일드의 아들 나단은 나폴레옹이 워터루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루머를 퍼트려 이로인해 영국의 증권시장은 붕괴했다. 로스차일드는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주식을 사들이고 전쟁의 진실이 알려지자 엄청난 수익을 거둔다. 로스차일드는 선제후의 자금을 굴리면서 천백만 파운드를 축적했다. 나단은 선제후에게 약간의 이자와 함께 원금을 돌려준다. 결국 로스차일드 가문은 피난민으로 유럽대륙을 떠난다.

 

나치는 요셉 괴벨스에 의해 1940년 <영원한 유대인>이란 다큐멘타리를 상영하기도 했다. 파시즘은 전쟁을 찬양하는 선동미학을 발전시킨다. 이것은 동시에 증오 인종에 대한 선동정치를 예술화한다. 영화예술은 나치 군대의 전위역할에 속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음모론으로도 유명하다. 가문의 금융제국은 미국의 중앙은행을 콘트롤하고 2차 세계대전을 유발했으며 수익을 위해 홀로코스트를 기획했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미국의 연준은 1930년의 대공황과 2000년의 경기 대침제로 인해 강화되었다. 로스차일드의 가문의 입김이 작용하기보다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에서 승인한 이사 7명으로 구성된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2차세계대전이나 홀로코스를 지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치에게 붙잡힌 자신의 가족을 구출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지불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대부분 로스차일드 가문은 영국으로 도피했다.

 

사회학적 접근과 인종 실존주의

 

아렌트는 로스차일드와 반유대주의를 다룰 때, 계보학적으로 18세기 프랑스 혁명정부의 유대인 해방에 주목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이전 군주제에서 누리던 유대인 은행업자들의 특권과 신분 그리고 부에 대비시킨다 . 그녀의 분석에 의하면, 유럽에서 반유대주의는 근대국가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오히려 군주제에서 유대인들이 누리던 사회적 신분과 특권 그리고 부는 상실되었고, 자본주의 경제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로 들어오면서 유대인들은 경제적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근대의 반유대주의가 출현했다.

 

아렌트가 인종주의를 접근할 때 중요한 틀은 제국주의 정치 경제학이다.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반유대주의와 인종문제를 분석할 때, 그녀의 입장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전체주의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반유대주의를 단순히 유럽의 민족주의나 외국인 혐오로 보지 않는다.

 

아렌트는 무소리니 파시즘과 히틀러 전체주의를 신중하게 구분짖고, 전자는 권력장악과 국가폭력기구를 통해 엘리트 지배를 구축한다. 그러나 전체주의는 지배방식에서 심리전의 수단인 선동정책과 인종주의를 통해 인간을 사회 내부로부터 테러화한다. 전체주의 지도자는 정부가 아니라 그를 지지하는 군중이나 대중의 기능대행인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반유대주의는 학살의 정치로 드러난다.

 

아렌트는 막스 베버의 카리스마 리더십을 전체주의 선동가에게 부칠 수 없다고 말한다. (ibid., 325, 362) 사실, 베버는 카이사르 독재나 민중선동가에게 카리스마 리더십을 부여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책임정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째튼 근대의 반유대주의는 전통적인 민족주의가 하락하는 시기에 출현하고, 그것은 유럽의 연방 국가와 권력균형이 충돌하는데서 정점에 달했다. 나치는 단순한 민족주의자들이 아니었다. 물론 대중선동을 위해 구소비에트에서 드러난 러시아 민족주의와 공유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볼세비즘이나 나치즘은 협소한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해외지배와 인터내셔날 성격을 갖는다. 19세기에 행해진 반유대주의에 인터내서날 스펙트럼이 작동한다. 아리안 인종에 기초한 독일세계제국은 히믈러의 친위대로 상징되고 세계정복과 전쟁으로 정당화된다. 이것은 인종적으로 적합하지 않는 그룹에대한 살해정치를 포함한다. (The Origins, 4, 412, 416)

 

아렌트의 접근은 나치 법학자 칼 슈미트와 정반대에 서 있다. 1933년 슈미트가 나치정부에 참여했을 때 1936년 12월 실각할 때까지 그는 나치권력과 사법의 정당성에 몰두했다. 슈미트는 나치정부의 참여를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히틀러를 제국의 수상으로 임명한데서 정당화 하기도 했다 (1월 30, 1933). 슈미트는 힌덴부르크가 국가를 상징하며, 대통령이 나치의 정치적 모험주의를 방지할 걸로 믿었다고 변명했다.

 

더욱이 슈미트는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이 실제적이며, 의회 의사당에 일어난 방화사건(1933년 2월 27)을 히틀러의 수상 임명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도발로 여겼다. 그는 의회의 동의없이 입법을 집행하는 정부의 권한을 인정하는 법령 (1933년 3월 23)에 옹호하고, 이 법령은 독일사회의 완전한 나치화를 위한 토대가 되었다. 이것은 결국 바이마르 헌법과의 결별을 의미했다. (Schmitt, xiv)

 

슈미트는 리버럴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부터 결별하는 나치의 민족주의 혁명을 지지하고, 나치의 지배에서 모든 정치적이며 법적인 결정은 초인격적인 인종 공동체에 의해 선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국가, 운동, 민족>에서 그는 나치적 사고의 근본개념을 인종 동질성과 지도자주의에 관련지었다. 지도자는 독일국민의 의지의 화신이다. 인종의 공속성이 모든 인간의 이성과 언어과 판단을 선결 정한다. (Schmitt, Staat, Bewegung, Volk, 42, 45)

 

슈미트에게서 인종적 사고는 엄격한 생물학적 통찰을 기초로, 모든 법은 특수한 국민의 법이다. 인식론적 진리는 인종에 구속된 존재론적 방식으로 법을 산출하는 공동체에 속하는 데 있다. 여기서부터 사실들을 바로 보고 언어를 이해하며, 민족의 감정과 사태를 바르게 평가할 수 있다. 개인은 주어진 민족과 인종의 실재에 속한다.

 

주관적인 양심을 가지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객관적일 수가 없다. 본성상 다른 사람은 전혀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고 쓴다. 그의 생각과 이해는 실존적인 차원에서 다르다 (ibid., 45). 아리안 인종주의는 비-아리안 인종에대해 전쟁을 선포하고 슈미트의 적과 동지의 진영논리는 전체국가의 기초가 된다.

 

나치 이데올로기는 보편적 인간의 이성에 근거한 객관성을 배제한다. 그것은 실존주의적이며 전통과 인종에 공속되는 공동체를 강조한다. 이것은 불변하는 생물학적 사실에 기초되며 주어진 민족과 인종에 공속되며, 개인의 두뇌의 가장 적은 조직에까지 스며든다. 이것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정부지배가 아니라 비밀경찰 ("국가안의 국가)과 테러정치 그리고 군중선동을 통해 전제 지도자의 권위에 의해 지속적인 운동으로 전개된다.

 

1933년 5월 17일 쾰른 대학의 학생 유니온이 유대인 지식인들의 책을 불태웠을 때, 거기에는 아렌트의 책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슈미트는 이러한 사건을 독일을 비-독일정신과 반-독일적 쓰레기로부터 씻어내는 정화행위로 찬양했다.

 

슈미트가 인종 실존주의를 통해 나치의 민족혁명을 찬양했을 때, 아렌트는 게슈타포의 검거와 초기 수용소의 고문과 지옥을 목격했다. 슈미트와 하이데거와 같은 지식인들은 이러한 현실을 단지 외면하기보다는 파괴적인 이론과 형이상학의 영역으로 도피하려고 했다. 이러한 태도는 시온주의자 아렌트에게 그로테스크하게 보였다 (Arendt, Thinking Without a Banister, 429–30).

 

인종실존주의를 통해 슈미트가 나치즘을 정의할 때, 반대로 아렌트는 나치즘이 가져온 폐해와 폭력에 주목하고 전체주의 성격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다. 반유대주의의 시작과 정점은 근대 유럽의 역사에서 유대인을 유럽의 사회로 통합하는 정책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