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의 헤겔의 문제틀
라캉은 헤겔의 절대지가 ‘모든 것이 아니다’ (not-all)로 해석한다. 라깡의 입장은 지양을 통한 헤겔의 변증법적 종합과는 다르다. 지양에서 사물의 죽음이 일어나며 실재계는 여전히 종합에 대해 부재와 해체로 거기에 있다. 프로이드의 심리학적인 개념인 부정과 억압 그리고 승화의 관계에서 라깡은 헤겔적인 변증법을 해석하려고 한다.
라캉은 헤겔의 <정신 현상학>안에 무의식이 존재 한다고 본다. 무의식은 여전히 변증법적 운동에서 흔적과 부재를 남긴다. 그는 프로이드의 부정과 억압의 관계에 주목하고 헤겔의 지양개념에 근접한다. 사유는 부정을 통해 타자를 인식하며 자의식에서 표현한다. 이것은 이미 억압에 대한 비판적 고양과 보존(지양)을 지적하지만, 헤겔은 억압된 것 자체의 수용을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 강압의 반복과 증세들이 나타난다.
프로이드를 통한 라캉의 헤겔해석은 사회비판적 차원에서 징후발견적일 수 가 있다 (알뛰세). 라깡의 해석은 알렉산드르 코제브의 영향으로부터 온다. 코제브에 의하면 헤겔의 변증법에서 생사를 건 투쟁에서 죽음의 이념은 인간의 자존심과 위신을 충족 시키는 유일한 것이다. 죽음으로 표명되는 무에서 역사를 창조해나가는 노동자들과 투쟁가들은 실존으로 변화된다. 죽음 속에 머무는 것이 부정성을 실현하며, 죽음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게 한다.
죽음에 대한 이념만이 인간의 긍지를 충족시킨다면 이것은 프로이드의 죽음충동과 만날 수 있다. 프로이드에게서 생명이란 죽음으로 가는 우회로이며 죽음충동 (본능)에서 파괴성과 공격성으로 주로 나타난다. 그러나 프로아드는 죽음충동에 항복하지 않고 문화를 위한 에로스 원리(셍활세계)를 붙들고 나간다. 프로이드는 반 파시트적이다. 이런 점에서 라캉의 주체와 주이상스는 인간의 생의 충동과 희망에 대해 염세적이다.
페미니스트 비판
벨기에 출신 루스 이리가레는 초기 라깡의 영향을 받았지만 1974년 출간한 <Speculum of the Other Woman> 에서 프로이드와 라깡을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비판했다. 그녀는 시몬느 보브와르의 <제 2의 성>에서 기본테제ㅡ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되어간다ㅡ를 수용하고 가부장적으로 구성된 여성과 젠더를 여성의 급진적인 다름에서 발전시켰다.
이리가레에 의하면 프로이드와 라깡은 오로지 남성 주체을 언급하지, 여성주체는 결여된 것으로 본다. 라깡의 표현 ㅡ여성은 전체가 아니다(not all)ㅡ에서 주체성은 남성을 위해서만 가능하다. 이리가레는 남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여성의 다름을 구성하려고 한다. 라깡의 상징계에서 여성이 아버지의 아름 아래서 남성화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나 이리가레는 역사와 사회에서 밀려나간 여성의 다양한 소리와 여백과 침묵을 들으려고 한다. 이것은 상징계의 남성지배와 담론을 새로운 여성의 기호로 대신한다. 여성이 주체가 돠기위해 종교적인 상징언어에서 여성 신의 지평이 요구되고, 남성 신의 담론은 배격되어야 한다. 여성은 남성이 아니라 신과 동일시 되어야하고 이것은 영지주의 형이상학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고대 군동에서 여성신 개념을 만들어 사회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지배한 자들은 남성 권력 지배자들이었다. 여성신의 기호와 상징을 만둘어 가부장적 표현을 제거한다면, 이라가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기입된 종교이념과 물질적 관계의 선택적 친화력 그리고 권력관계의 그물망을 해체해야한다. 남성기호가 바뀐다고 해서 사회적 의미론과 지배 시스템이 바뀌지는 않는다.
고대근동의 여성 신개념 또한 가부장 체제에서 정치 이데올로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여성주체를 위해 우리는 어디서 남성과는 극단적인 다름을 찾을 수 있을까? 라깡에게 이것은 불가능하다. 태초에 대문자 여성(Woman)은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프로이드적인 면에서 여성의 쾌락원리가 현실원리를 전복시킬 때 초자아의 세계는 헤체되며 사회는 허무주의와 야만상태로 돌입하게 된다.
크리스테바의 비판적 보충
라캉의 페시미즘을 넘어서는 크리스테바의 정신분석의 모성적 사랑의 윤리는 중요하다. 역사가 사건으로 나타날때 여기에 책임적 응답을 하는 사회변혁의 자리는 주체의 실천(마르크스)에 있으며 시니피앙의 구조에 있지 않다. 진리와 윤리는 실재계에서 효과를 산출하며 정신분석의 치유를 가능하게 한다. "태초에 사랑(Agape)이 있었다." (The Kristeva Reader, 18)
크리스테바는 예속된 자들의 인정정치를 위해 헤겔의 절대지와 인정에 주목한다. 절대자의 파루시아(임재)는 가까이에 그러나 멀리있다. 이것은 변증법의 원근법이며 매개와 대상이 없지만 동시에 절대지안에 그 계기를 포함한다. 절대지는 우리 곁에서 진리의 빛으로 우리를 계몽한다. 이러한 헤겔의 절대지와 직접성을 크리스테바는 오이디푸스 이전 단계에서 모성의 코라와 아버지의 인격성을 결합한다 ("Freud and Love," ibid., 255-6).
프로이드의 에로스적 생은 인정과 전이와 역전의 사랑 그리고 사회적 실천을 향해 사랑의 고고학으로 변형된다. 어머니의 코라와 ㅡ역사이전의ㅡ원초적 아버지의 인격성은 유아에게 에로스가 아니라 신성한 아가페로 출현한다. 정신분석에서 나타나는 전이와 역전이의 사랑은 피분석자의 원초적 아버지와의 관계를 강화한다.
라캉과 코제브 그리고 너머에
라캉은 코제브의 헤겔 해석에 결정적으로 의존한다. 인간의 욕구는 생사를 건 투쟁에서 모든 자유로은 개인의 인정으로 나타나지만, 여전히 죽음충동이 중심에 있다. 이러한 보편성의 우주 안에서 개인은 신이 없는, 또한 신을 넘어서서 자신의 존재를 느낀다. 이러한 자유의 인정에 기초한 무신론적 감정은 세계 안에 존재하는 인격에 독특한 것이다 (꼬제브, <역사와 현실 변증법>, 330-1)
이러한 코제브의 헤겔해석과 죽음의 이념은 라캉에게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러한 방식에서 헤겔의 불행한 의식과 아름다운 영혼은 실존적으로 그리고 문학적으로 매개된다. 불행의식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내면화되는 노예의 체념을 지적하며, 역사적으로 신경증처럼 반복된다.
이것은 아름다운 영혼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영혼은 고귀하기 보다는 외화의 능력을 상실하고, 상호주관적인 관계에서 언어를 통해 자기를 형성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인정투쟁은 라캉에게서 상상계를 넘어서 상징계와 연관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헤겔에게서 인정의 변증법은 문화적으로 외화되는 비판적인 사회학을 말하지, 심리학적 기재로 환원되지 않는다. 불행한 아름다운 영혼은 여전히 타자를 인정하는 언어의 매개를 필요로하며 사회화가 된다. 이것은 심리적인 것을 넘어서서 내면적이며 영혼의 신성에 대한 관조일 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미학적이며 동시에 신의 음성을 내면에서 듣는 종교적인 의미를 갖는다 (쉴라이에르마허) (Hyppolite, Genesis and Structure of Genesis of Phenomenoloy, 514).
교차 텍스트의 자리
크리스테바가 아름다운 영혼에서 종교체험과 사랑의 의미를 본다면 라캉은 죽음충동과 결부된 무산론적 주이상스를 본다. 여기서 나는 크리스테바의 시니피앙 실천의 기호 사회학을 헤겔의 현상학으로 통합한다. 헤겔의 욕망과 충족틔 체계변화는 인정투쟁과 실천 그리고 파레시아의 담론에 관여한다. 말하는 주체는 사회적 교환과정과 체계화 그리고 소통에서 의미를 재구성하고 갱신할 수 있다. 언어의 질서와 구조 또한 실천과 함께 변형된다.
헤겔의 현상학은 말하는 주체의 욕망과 충족의 체계변화애서 움직이며, 타자와 상호주관적 관계안에 있다. 그러나 크리스테바는 교차 텍스트(intertextuality)를 통해 말하는 주체를 상호 택스트의 세계에 관련 짖는다. 소통합리성은 언어의 사회적 콘텍스트에 엮어지며, 크리스테바는 <말, 대화, 그리고 새로움>에서 교차 텍스트는 인용들의 모자이크이며, 하나의 텍스트는 다른 택스트를 흡수하고 변형시킨다. 이 개념은 상호주관성을 대신한다. 시의 언어는 적어도 이중적인 의미에서 읽어져야한다 (The Kristeva Reader, 37).
교차 텍스트는 헤겔의 현상학을 생활세계와의 관계에서 일고 두터운 기술을 하도록 도와줄 수가 있다. <정신 현상학>에서 변증법은 욕망과 충족의 변화체계에서 움직이고 이것은 타자의 욕망을 흡수하고 인정을 통해 변형시킬킨다. 더 나아가 자기의식의 영역과는 다른 영역의 텍스트 (불행한 의식, 아름다운 영혼, 예술종교, 계시종교, 절대지 등)와 교차되면서 텍스트 내재적 비판의 차원에서 독해질 수가 있다. 해석되지 않고 말해지않는 것들이 텍스트 안에는 충분히 존재한다.
텍스트의 의미는 사회와 역사 그리고 문화에서 펼쳐지며, 정신의 운동을 통해 이성의 합리성에 의해 역사의 진보가 일어나는 한 측면이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다른 영역의 유효한 역사를 망각하는 부재와 이탈을 교정하면서 출현한다. 의미는 결정된 것이 아니라 과정에 있으며, 비결정성과 비소통성 그리고 불확정성에 의해 인정과 타자에게 해를 끼치지않는 무해의 원리 그리고 창조성으로 설정된다.
욕망의 주체는 부정성과 매개되며 타자를 인정하는 승화의 과정을 거치지만 정치 사회 그리고 역사적 영역에서 사회문화적 코드를 변형시킨다. 그러나 헤겔의 한계는 아름다운 영혼에서 드러나는 사랑의 종교적 체험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이 없다. 에로스적 존재는 사랑의 존재이다. 크리스테바는 헤겔-라캉을 원초적 생의 충만함으로 채워주며, 저저의 전통적인 힘과 권위로부터 독자를 해방 시킨다 (롤랑 바르트). 저저의 죽음이 선언되지만, 근대성의 저자는 교차 텍스트의 세계에서 트랜스 모더니티의 차원에서 더 잘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