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의 헤겔 짝사랑은 라캉보다 더 심하다. 지젝은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다양한 투쟁들에 공감하고 이러한 투쟁들이 라캉의 실재계의 불가능성을 공동으로 지적하는 시니피앙으로 말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라캉이 주인과 노예의 인정투쟁을 유아기의 상상계 즉 거울단계로 이전시킨 것은 문제가 있다. 유아가 무슨 생사를 건 노동과 투쟁을 부모와 하는가? 지젝은 다르다. 라캉을 넘어서서 지젝은 헤겔의 죽음충동을 프로이드의 죽음충동으로 연결하고 사회적인 영역으로 이전시킨다.
프로이드의 죽음충동은 인간의 심리적 기재가 맹목적인 반복의 자동화 과정에 예속된 것이며 쾌락과 자기보존을 넘어선다. 헤겔에 의하면 인간은 로고스와 이성과 언어의 채워지지않는 추구로 위협당해 죽음에 이르는 병든 동물이다. 죽음충동은 급진적 부정의 차원으로서 서외된 사회적 조건으로 환원될 수 없다. 죽음충동은 파할 수 없는 인간의 기본조건이다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xxvii).
지젝은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을 비판한다. 마르쿠제는 프로이드의 한계를 헤겔과 니체를 통해 억압적인 리비도의 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해방된 합리적 사회를 기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젝에게은 민주주의는 항상 부패와 중우정치를 열어놓는다. 해방에 기초한 민주주의열망은 반대로 민주주의 파괴로 진행된다. 여기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는 헤겔과 다를 바가 없다 (xxviii).
아것은 무슨 시니피앙 변종해석인가? 헤겔은 지젝과 라캉사이에서 곤혹스럽다. 헤겔은 철저하게 마르크스와 분열되고 프로이드의 비관주의와 현실원에의해 재단되기 때문이다. 안간의 출생성에서 태를 끊고 나오는 유아의 원초적 경험 다시말해 세상과의 극단적 적대감은 제거될 수 없다. 이러한 적대감울 제거하려는 열망은 젠체주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xxviii).전체주의 비전 (홀로코스트와 스탈린)에서 적대적 긴장이 없는 조화로운 신인간 개조는 대중살해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라캉과 지젝의 죽음충동에 기초한 헤겔해석은 나에게 고고학적 해명 즉 교차 텍스트의 세밀한 분석을 요구한다.
라캉의 주이상스
라캉은 주이상스 (금지된 욕망; 근친상관의 경우)을 Das Ding으로 부르는 데, 그러나 사회적으로나 법으로 인정된 사물은 die Sache (허용된 욕망대상)로 말한다. 주이상스와 Das Ding의 관계는 상징계의 대타자에 의해 거세된 것이지만, 마치 가장 가까운 나의 이웃일 수가 있다. 그러나 허락된 것이 아니다.
예를들어 주이상스와 Das Ding은 상징계의 외부 즉 실재계의 속하기 때문에 현상학적으로 의미회 되지가 않는다. 라캉은 이것을 예수의 명령--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에 비교하기도 한다. 라캉은 주이상스를 죽음의 충동에 대한 욕망으로 말하지만, 나의 욕망은 상징계의 대타자에 의해 지배된다. 그러나 성자나 신비가들의 삶에서 금지된 욕망의 주이상스가 나타나는 데,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일이나 원수사랑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스피노자의 무우주적 사랑 또는 베버의 사회학에서 심정윤리로 표현될 수가 있다.
그러나 라캉의 주이상스는 심지어 마르키 드 사드의 작품에서 대타자에 의해 지배되는 기존의 성적의 현실을 넘어서 상징계의 외부로 걸어나가는 주이상스를 보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주이상스는 무우적인 사랑과 구별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칸트의 정언명법은 주이상스의 윤리에 속할 수가 있다. 그것은 물자체 또는 본체계가 인간의 자유와 도덕 안에서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존중하는 명령 또는 의무로 나타난다. 대타자의 지배와 언어의 영역에서 즉 문명이 주이상스의 야만을 외부의 영토로 내쫒았는데, 이러한 투쟁에서 문화와 야만의 경계에 구멍 또는 파열이 생겨나는데, 이것은 주이상스의 흔적으로 여기 저기서 나타난다.
이것은 objet a 즉 조그만 타자대상 (잉여항유의 대상), 또는 떨어져나간 부분충동의 대상으로 부른다. 잉여향유는 주이상스에 속하지만 억압의 대상 (원초적 어머니)과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상징계에서 만나고 사랑하고 교환하는 상호주체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유아기에서 아이가 어머니로부터 떨어져나갈 때 소외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소외현상에서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부분 충동들이 남겨진다. 이러한 해소되지않은 부분충동들이 상징계의 사회질서로 들어올 때 이것은 더 이상 어머니가 아니라 자아와 타자의 관계로 전이되고 변형된다.
라캉의 입장을 지젝은 진보와 해방을 열망하는 모든 사회운동들에 적용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파시즘으로 진행한다. 생태학적 운동 역시 자연으로 되돌아갈수 없는 심연에 부딪친다. 페미니즘의 본질주의는 남성지배의 상장계에서 이미 남성주의 가치와 욕망에 의해 침투 당한다. 나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 나는 결팝된 주체이다.
지젝은 자신을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첫 번째 헤겔주의자로 본다. 왜냐하면 헤겔에게서 시민사회의 적대감은 전체주의로 몰락하지 않고 억압할 수 없다. 이후에야 국가는 비로소 재앙의 결과들을 제한하고 완화할 수 있다 (xxviii). 지젝의 평가는 양가적이다.
헤겔은 예나시대에 쓴 <도덕의 윤리성>에서 시민사회를 부르주아 사회로 일치시키고 노동과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대립과 투쟁을 마르크스 못지않게 직시했다. 헤겔은 당대 영국의 정치경제학을 섭렵했다. 그러나 헤겔은 <정신 현상학>에서 프랑스 혁명의 자코뱅의 테러정치를 절대자유의 출현으로 보았다. 결국 절대자유는 시민사회를 몰락시키고 공포정치의 늪에 빠졌다.
헤겔이 국가의 인륜성을 구상하는 것은 이 지점에서 부터이다. 그것은 상호인정에 기초해 "나와 네가 우리"가 되는 구체-보편 변증법을 말한다.국가는 여전히 세계정신과 연관하여서 있다. 지적의 시니피앙 헤겔독해는 역사적 경험의 내용이 빠져있다.
헤겔은 이러한 페시미즘 논리에서 라캉과 지젝으로부터 갈라선다 . 헤겔에 의하면, 나는 타자를 향유하기위해 노동을 통해 소외시키지만 (잉여향유), 주이상스의 해방은 타자인 노예에게 있다. 라캉의 잉여향유는 헤겔에게서 사회 안에서 욕망과 충족의 체계변화로 구성되지만, 이러한 소외를 해결하는 매개와 승화를 노예의 인정에서 본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ㅎ하해와 사랑을 지적한다.
헤겔: 에로스와 사랑
헤겔의 변증법에서 부정성은 단지 타자를 지양하고 새로운 관계의 총체으로 형식 논리화하지 않는다. 헤겔의 지양개념에서 자아와 타자의 갈등과 대립 또는 소외된 노동의 문제가 파괴되어 새로운 질서로 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잉여향유에서 소외된 노동의 안티노미가 존재하며, 헤겔은 인정과 사랑 또는 타자에 대한 무해의 원리에서 해결한다.
이미 <법철학>에서 헤겔은 분업이 마르크스처럼 부정적 계기만 (소외된 노동) 갖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시스템에서 작동될 때 동료들간의 유기적 연대감이 현상한다고 본다. 악셀 호네쓰는 <The I in We>에서 헤겔을 뒤르캠의 분업 사회학에 연결한다. 헤겔의 공공선 거버넌스와 시민사회 국가는 윤리적 연대와 인정에 기초한다 (Honneth, 69).
더우기 <대논리학>에서 헤겔의 개념원리는 지양을 인정과 타자에 대한 무해의 원리 그리고 창조성에서 이해한다. 소외와 탈소외는 외재화 과정 즉 문화와 시민사회안에서 드러난다. 헤겔은 지젝의 양가적 해석을 교정한다.
주이상스의 사랑윤리는 헤겔의 초기 논문 <사랑, 1798>에서 볼 수 있다. 헤겔에 의하면 이성은 자신의 결정하는 힘을 결정된 것에 대해 행사한다. 그러나 사랑은 타자를 제한하거나 또는 타자로부터 제한되지 않는다. 이성이 힘이라면 사랑은 감정이며 삶은 감정에 의존하지만, 삶은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산출하며 미성숙에서 성숙함으로 나가는 발전의 순환을 경험한다.
대립과 분열과 죽음은 사랑 안에서 품어져 제거되며, 생의 전체가 나타나며 사회적인 삶에서 불멸의 원리로 이어진다. 이것은 헤겔이 프로이드에게 공감하는 문화와 에로스와 사랑의 원리일 수가 있다.
헤겔은 <로미오와 쥴리엣>에서 쥴리엣의 말을 인용한다.
"나의 풍부함은 대양처럼 끝이 없다. 나의 사랑은 깊다. 내가 당신에게 주면 줄 수록 나는 더 많이 갖는다." (<로미오와 쥴리엣>, ii.1. 175-77)
삶의 사랑의 부요함이 모든 사고를 교환하며 모든 다양한 내적 경험을 얻는다. 사적소유는 사랑 안에서 공동의 소유으로 전환한다. 모든 삶에서 부터 사랑을 들여 마심으써 개별화된 몸은 사랑하는 상대방의 몸을 통해 살아있는 자녀를 불멸의 씨앗으로 갖는다. 사랑안에서 하나님을 활동하고 창조하신다.
만일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라캉의 잉여향유를 본다면, 잉여가치는 경제적인 영역에서 특히 노동과 상품에서 교환에서 발생한다. 사물의 가치가 사용이 아니라 교환에서 잉여가 나타난다면, 라캉에게서 이것은 주체의 기표와 타자의 기표와의 교환 즉 상호주관적인 기표의 교환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교환에서 주이상스의 성 충동의 금지된 욕망이 현상한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의 원인은 주이상스가 된다. 그러나 로미오와 쥴리앳의 어린 시절 거새된 금지된 성욕망을 섹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라캉이 무의식을 사회의 상징계로 본다면, 이러한 영역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관계는 생물학적 성충동과는 달리 사회의 지배담론에 의해 구성된다. 여기서 잉여향유는 소외와 물신숭배사회안에서 (경제적) 교환가치로 나타나지만, 이러한 과잉욕망과 죽음충동에 기초된 사랑은 희생자나 신비가들의 체험애서 드러나는 무우주적 사랑을 충분히 표현할 수가 없다.
다시말해 주이상스의 사랑을 무우주적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사회문화적 계기들은 중층결정으로 나타난다. 헤겔에게서 잉여항유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나타난다면, 그것은 무우주적인 사랑 즉 심정윤리에서 파악된다. 노동과 교환에서 잉여가치는 상호주체의 기표의 교환에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타자의 노동을 소외시키고 향유하는 새로운 문제로 등장한다. 이러한 죽음의 충동과 소외된 노동에 기초된 문명을 생의 원리로 변형시키는 것은 심정윤리에 있고, 그것은 희생자 또는 소외된 자로부터 출현한다.
헤겔과 프로이드는 에로스적인 철학을 공유한다. 사랑과 인정욕구를 기초로하는 사회는 문명을 삶의 원리로 증대해가며 파괴와 폭력의 원리에 저항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은 파시즘적인 이항의 대립이나 진영논리에 기초한 집단적 이기주의나 프로펠타리아트 독재나 죽음의 문화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과 인정 그리고 공공선의 정의를 실현하는 노동의 가치 즉 경제의 분배정의를 지향한다. 나는 이러한 틀에서 라캉과 지젝과 열린대화를 한다.
헤겔의 오해와 한계
헤겔의 정치철학에 대한 비판은 그가 훗날 프로이센 국가의 어용 철학자라는 비난에 있었다. <나폴레옹 법전>은 구독일 제국의 많은 도시들에 도입이 되었고, 시민의 평등과 종교의 자유, 십일조와 봉건제의 폐기, 자유로운 행정과 관료들이 증가 그리고 조세와 법률에 대한 투표권 등이 확대 되었다. 헤겔이 나폴레옹을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이성의 원리에 입각해 시대적인 보편적 과제로 실현할 역사적인 영웅으로 본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헤겔에게 악몽으로 작용하는 것은 1793년에 나타난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이며, 이러한 공포정치를 막을 수 있는 정치제도를 이성적인 헌법을 기초로한 국가와 합리적인 관료제에서 보았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헤겔은 프랑스 혁명을 자신의 철학의 원리로 고양하고, 이것을 통해 당대 철학을 극복 한다. 다시말해 헤겔의 혁명철학은 혁명에 대한 비판 철학을 의미한다 (Habermas, Theorie und Praxis, 128).
지젝도 하버마스의 평가에 근접한다.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시대에 헤겔은 급진성 개념을 재고하게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시도했던 사회적 대립과 적대감은 급진적으로 해소할 수 없다. 이것은 불가능성이며 실재계에 속하며 , 모든 것들을 상징적으로 통합하고 총체성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삶에서 모든 해결은 잠정적이며 급진적 민주주의는 역설적으로 순수하고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도 '급진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급진적 불가능성을 고려하면서 민주주의를 견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에서 혁명의 글로벌 완성은 모든 구체적인 문제들을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조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글로벌 기획은 불가능성에 직면하고 고착상태에 빠졌다. 지젝에 의하면 헤겔의 변증법은 이러한 근본대립을 고려하고 모든 실패들은 그의 순환적인 시스템안에있다. 헤겔의 절대지는 모든 동일성의 내적조건으로 대립을 수용하지, 모든 개별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들울 통채로 삼키는 괴물이 아니다. 그의 화해는 모든 개별현실들에 대한 범논리적인 지양이 아니다. 개념자체는 모두가 아니다 (라캉적인 의미에서).이런 점에서 헤겔은 첫번째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다 (The Sublime Object of Idealogy, xxix).
그러나 헤겔의 <법철학, 1821>의 서문은 자유주의자들로부터 어용 철학으로 공격 당했다. 프랑스의 지배로부터 독일제국의 해방은 1813년부터 1815년에 일어난 전쟁의 환멸과 사법개혁의 실패로 인해 사회적 위기감이 팽배했다. 학생연맹(Burschenschaft)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운동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것은 프랑스에 대한 혐오감과 귀족들에 대한 증오,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드러내고 독일통일과 민족을 구원할 영웅을 추구했다. 독일민족이 사법위에 군림해야 하며, 이러한 사이비 민주주의 운동에서 파시즘적인 민족 협동체 이데올로기를 발견하기는 어렵지가 않다.
헤겔의 <법철학>은 이러한 사이비 민주주의 운동에서 드러나는 심각한 자유의 위협에 저항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헤겔의 국가는 비판적 이성과 보편적이며 합리적인 법에 의해 모든 개인들의 자유와 권익을 보호하는 국가를 말하지, 민족 공동체나 사이비 민주주의와는 결을 달리 한다. 근대국가의 합리성은 인종공동체나 왕권신수설이 아니라 법의 합리성과 지배에 기초한다. 당대 사회경제적 구조가 분석되고 이념으로부터 돌출해내지만 여전히 해겔은 유물론적 방법을 취하고 있었다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199-203).
인륜의 실현으로서 헤겔의 국가이론은 영국에서 국민투표를 기초로 발전되는 대표 정치제도에서 평화보다는 폭력과 사회적 위기를 경고했다. 여기서 국민은 원자들의 집합에 불과하며, 정부의 세금제도에 대한 투표권은 국가권력을 약화시키고 국민 대표제를 위한 선거는 비이성에 호소하는 것과 같다. 개인은 사적이익을 추구하며 자유경쟁사회에서 자동적으로 일반의지나 공공선을 추구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헤겔과는 달리 1832년 영국의 개혁법은 잉글랜드와 웨일즈에 선거제도의 주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경제적 자격을 갖춘 남성들에게 일반적인 투표권이 주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여전히 귀족의 이익에 부합되었고, 여성선거권 (1918) 이나 빈곤층들에겐 해당이 없었다. 이것은 1836년 21세 이상의 남성 선거권과 의원의 재산 자격제한의 폐지 그리고 비밀 투표를 골자로하는 국민헌장 청원을 차티스트 운동으로 전개 되었다.
헤겔 자신에게 혁명과 반동이 변증법적 경험으로 혼재한다. 그러나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이라면 현실적인 것은 여전히 합리적 이념의 원리에 입각해 갱신되어야 한다. 그러나 헤겔의 낙후한 독일과 당대 해외 식민지를 구가하며 산업혁명을 기초로 가장 선진적인 영국사회에서 정치 체제는 전혀 달랐다. 자유방임주의와 사회진화론이 이 시기 영국의 정치와 경제제도를 선도했다면 독일에서 산업화는 1815년-1835년 사이에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이른바 산업혁명은 1871년 독일 통일 이후부터로 볼 수 있다.
헤겔에게서 자유의 구체적 형태는 자유로운 개인의 노동을 기초로 한 온전한 소유권에 있으며, 인격은 소유에 의해 비로서 이성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로크의 사회계약론을 근거로 한 소유 개인주의와는 다르다. 국가가 인륜의 형태로서 법적 지배를 통해 인격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이것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권리를 차별하지 않는다. 만인이 법앞에 평등하다. 이러한 부와 소유권에 대한 인격적 접근과 사법적 평등이 이성적인 사회질서가 된다.
독일의 역사발전에서 볼 때, 헤겔은 영국이나 프랑스의 정치나 종교 시스템은 적용되기 어렵다고 본다. 오히려 독일에 필요한 것은 만일 국가가 시민사회의 경제 위기를 관리하고 공공복리를 위해 인륜적인 시스템으로 작동된다면, 시민사회는 종교개혁을 기초로한 종교의 자유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경제사회의 불의와 갈등 그리고 대립은 국가의 인륜적인 몫에 들어가며 여기서 아우구스부르크 협정에서 나타나는 국가와 종교의 관계가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다르게 설정된다.
간략히 말해, 헤겔은 종교개혁의 율법의 제 1기능, 즉 국가의 기능을 철학화하고 자기 시대에 재해석을 했다. 국가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질서이며 율법에 속하며 인간의 합리적인 법과 이성의 지배에 의해 다스려져야 한다. 그러나 국가는 복음에 의해 다스려지는 종교에 관여해서는 안된다. 교회는 언제든지 이성과 합리성을 기초로 정치영역에 관여할 수가 있다. 그러나 복음으로 국가를 다스릴 수가 없다. 국가의 역할은 사유재산의 소유자들의 무정부 상태와 집단적 이기주의를 넘어서서 상호인정과 자유를 기초로한 이성적인 사회질서로 나가야 한다.
헤겔은 파시즘과 날카롭게 구별된다. 히틀러 시대에 에어랑엔 학파의 폴 알트하우스와 같은 보수파 루터주의자들은 교회를 국가에 예속시켜 시녀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헤겔의 변증법은 총체성 안에서 개별적인 것들의 대립과 부정 그리고 이행을 다룬다. 그는 가족,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를 구분하고 상대적인 권리를 갖으며 국가조차도 정신의 세계사적 스펙트럼에서 이성의 절대권위에 복종시켰다. 그에게서 국가는 정치형태라기보다는 인류의 역사에서 지속적인 것이며 개인의 삶을 보호하는 인륜적인 차원을 갖는다.
그러나 파시즘에서 산업가들은 생산을 독점하고 제국의 팽창주의로 나간다. 생산력은 증대되고 개인의 삶은 정치 권력자와 관료계급에 복종해야한다. 국가는 인종/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드러나며 민족성이 국가우위에 서 있으며 반유대주의와 인종 학살 정책이 수행된다. 개인들의 연합체인 시민사회와 인권는 국가-당-민족의 일치안에 통합된다. 보편타당한 사법에 의해 지배되는 이성으로서 국가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 자리에 피와 땅에 결속된 인종집단주의가 나타난다. 이것은 헤겔이 말하는 인륜성이 구현된 국가개념과는 다르며, 헤겔은 프리드리히 대왕의 전제주의 국가가 아니라, 구체적 자유 즉 개인의 주체성과 공동의 보편성이 화해가 드러나는 정치적 인륜공동체를 강조했다 (Taylor, Hegel, 387).
이 점에서 헤겔은 포스트 파시즘의 첫 번째 철학자이다. 헤겔은 여러가지 점에서 마르크스의 선구자로 볼 수 있는 내용들을 담고있다. 개인의 삶을 보편정신과의 관련에서 파악하는 헤겔의 변증법은 방법론적인 보편주의로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주의는 헤겔에게 개념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인 개혁 운동을 통해 전개된다. 헤겔의 시대는 자유와 인권, 계몽보다는 반동과 전제적 지배로 점철된 정치 체제였다. 헤겔이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첫 번째 철학자가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몰볼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절대자유의 가능성을 필연성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인민독재, 그리고 자유의 왕국으로 설정하고 프로메테우스적인 기대를 인간에게 부여한데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공개적으로 말을 했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