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의 후설비판과 해체
데리다에 의하면, 후설의 현상학은 현전에 대한 인식론적이며 형이상학적 가치를 강조 하는데, 이것은 후설의 전체철학의 편견에 불과하다. 현전이 후설의 의미론에 기초 되는 데, 데리다는 이러한 문제를 후설의 언어이해에서 본다. 객관적인 의미(노에마)가 주체에 스스로를 드러내듯이, 의식 (노에시스) 또한 직접적인 의도성을 통해 자기현전화를 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존재를 의미 현전과 자기현존으로 해석하는 것은 후설의 의식과 의미 영역의 상관관계인데 이것은 허구이다. 데리다의 해체는 파괴라기보다는 비판 또는 헤겔적인 의미에서 부정을 담지만, 특히 현상학과 음성(로고스중심)주의에서 나타나는 진리의 의미를 파괴한다. 문자언어와 글쓰기를 통해 진리의 비결정성과 상대주의, 심지어 허무주의를 드러낸다 (Grammatology, 10).
데리다와는 달리, 후설의 언어개념은 문법과 표현의 구분에 기초되지만, 언어는 표현과 소통에서 전거를 가지며 의미를 갖는다. 후설에게서 문법이나 기호는 표현 하기위한 전거로만 중요하지, 텅빈 기표만 부각되지 기의는 없다. 표현의 의미내용이 이상적이며, 기표나 기록된 문자에 사고와 영향을 불어넣는다. 이런 편견은 기호를 표현과 의미에만 복무시키며, 자기 현전의 착각 즉 고독한 선험적 의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후설에게 나의 노에마의 현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생활세계로부터 오며, 생활세계 안에서 언어는 자기전거와 표현 그리고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 공동의 삶의 형식을 만들어간다. 이것은 두꺼운 기술의 현상학을 지적하며, 의미의 현전은 방법적 관점주의(지향성, 윤곽보충, 지평확대와 구성)와 함께 삶의 형식을 타자와 더불어 공동의 의미세계를 만들어갈 때 드러난다. 그러나 의미현전은 일회적이 아니라 생활세계로부터 나오며, 타자와 더불어 소통과 삶의 문법과 규칙을 지키면서 산출된다.
이러한 생활세계의 인식론은 기호학 (문법)과 표현의 연결망을 통합하고 상호주관적 소통과 삶의 실천형식의 다양성을 고려한다. 노에시스와 노에마가 상관관계에 있는 것처럼 문법과 표현 또한 상관관계에서 파악 되어야한다. 의미내용이 자기의식에 이미 이상적인 것으로 현전한다면, 이것은 자기반복과 대변을 통해 내적인 독백으로 머물지 타자와의 소통을 불가능 하게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언어에서 스스로 현전하는 것은 비현존 즉 부재를 드러내며, 이것은 타자, 다름 (차이와 지연), 또는 타재성이다 (Speech and Phenomena, 55; 120-160). 이것은 상당히 하이데거적인 영향으로 오며 여과없이 후설해체로 이어진다.
데리다의 해체철학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벗어나있는 차연의 무한한 게임 즉 영원 회귀의 게임에 근거해 있다. 그의 그라마 톨로지 (문자언어)에서 음성언어는 진리를 표현할 수가 없다. 문자의 언어가 먼저 있었고, 로고스 중심주의에 종언을 고한다. 글쓰기에서 소통의 대상은 부재하며, 의미는 심지어 저자 자신에게도 현재하지 않는다.
진리와 의미는 차연의 네트워크에서 현재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지연된다. 텍스트 외부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차연만이 존재하며 진리의 상대주의 내지 허무주의가 나타난다.
이런 측면에서 데리다의 차연에서 윤리나 사회정의는 가능한가? 차연철학은 아나키즘이나 허무주의로 귀결되어야한다. 저자 데리다의 글도 신뢰할 수 없고 차연으로 가득차 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데리다는 칸트의 코스모폴리탄원리를 복귀시키고 환대윤리를 말한다. 심지어 레비나스에게 백기 투항해서 타자의 정의를 말하고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의 마르크스 유령에게 제스처를 쓴다. 이런 갈지자 걸음의 데리다에게 가장 혹독한 비판가는 라캉의 자동인형기계 슬라보예 지젝이다.
현상학적 해명과 재인식
후설은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에서 당대 자연과학에 의해 지배되는 문화와 학문의 위기를 진단했다. 이러한 위기는 17세기 갈릴레이(1564-1642)와 뉴톤(1642-1727)의 근대 과학혁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자연과 세계에대한 수학화로 표현된다.
근대과학의 아버지 갈릴레이는 역사, 사회 그리고 자연 (세계의 복합성)의 전체관계를 기술지배와 수학공식으로 환원시켰다. 자연의 책은 수학의 언어로 씌여졌다—이것은 실험과 관찰에 기초한 갈릴레이의 자연철학 (물리학)의 새로운 방법론이였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수학의 인덱스로 환원된다. 예를들어 모양이나 크기나 위치나 숫자 등과 같은 일차적인 특질들은 수학적으로 표현되지만, 이차적인 특질들 (색깔, 맛, 따뜻함, 냄새)은 수학의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수학으로 표현될 수 없는 이차적인 자료들을 감각적인 신체에 만 있는 텅빈이름으로, 즉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했다. 귀, 눈, 혀와 코를 제거해버리면 이차적인 특질들은 사라진다. 아픔은 내가 느끼지만 나를 찌르는 핀이 느끼는 것은 아니다. 색깔의 성질은 간접적으로 파장의 길이로 환원되며, 그리고 따뜻한 성질은 간접적으로 전자나 원자나 분자의 움직임으로 환원되며, 수학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러한 수학의 형식주의를 통해 세계는 객관적인 실재로 완벽하게 설명되고,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과학이전의 세계의 경험 즉 생활세계는 과학적 세계에 의해 단순한 환상으로 폭로된다.
그러나 후설은 갈릴레이의 자연의 수학화의 방식을 문제틀한다. 환경세계에서 인간이 지각을 통해 물체를 경험할 때 이것은 기하학적 이념에 속하지 않는다. 물론 후설은 수학이 보편적인 생활세계의 형식인 시간과 공간에서 일차적인 의미에서 객관적 인식을 만드는 것을 인정한다. 갈랄레이에게 존재하는 것은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이전의 작관된 자연은 수학의 공식을 통해 이념화되고 조작된 세계로 환원된다. 인간의 경험에 무한히 열려있는 생활세계는 과학적 진리의 이념에 따라 측정되거나, 또는 과학이념의 옷에 맞추어 치수를 재거나 재단될 수 없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직관될 수 있는 세계의 물체들이나 의미현상은 선험적으로 세계구조에 따라 그리고 세계지평에 따라 의미가 부여된다. 세계는 모든 형식을 포괄하는 총체적 형식을 갖는다. 경험에 기초한 직관과 감각자료들 그리고 의미현상은 수학화되기 어렵다. 갈릴레이에게 자명한 것은 단지 순수수학을 적용한 영역에서만 나타난다. 자연과학의 이념과 수학에 의해 치수된 자연의 옷은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며 생활세계를 분장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수학의 규칙성과 엄밀성은 발견이지만 동시에 세계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는 은폐이기도 하다. 이것은 테크네이며 공식들을 조작하고 실천적인 적용기술로 만들어진다 (<위기>, 122, 138-9).
수학공식으로 자연의 본질은 남김없이 알려질 수 없고 기술지배 아래 놓여서는 안된다. 갈릴레이의 수학과 데카르트의 철학 그리고 뉴톤의 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 대한 반란에서 시작되었다. 실체는 단지 물질에 불과하며 형상은 없다. 식물이나 동물에게 영혼은 없다. 인간의 인식은 세계의 질료와 독립적이며 질료의 세계는 인간의 콘트롤아래 놓여있다. 잠재태와 형실태의 과정에서 유기체의 기능과 목적은 자연 환경을 작용인으로 포함하지만 이제 이러한 역할은 근대의 고학에서 인간에게 귀속된다. 자연의 질료는 개별부분으로 환원되고 분석되며, 이제 개별자가 유기체의 총체를 보톰 업 방식으로 지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서 유기체의 기능과 목적은 (예를들어 눈은 보는 기능을 갖는다) 뒷전으로 밀린다. 물질세계는 자체상 기능과 가치를 갖지 못하고 수학의 언어안으로 포섭되고 옷이 입혀진다.
결국 갈릴레이의 과학에서 수학적인 모델만이 전적으로 객관적인 실재인 자연세계를 대변하는 기획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자연과 세계에 대해 수학공식으로 파악한 근대의 과학 프로젝트에 속한다. 자연의 수학화는 자연에 대한 실험과 관찰을 단지 수학적인 용어로 번역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학모델을 통해 살아있는 자연의 생을 대변하고 지배한다. 생활세계의 풍부한 의미 (전통, 문화 역사, 사회 등)는 사라진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메에서 자연적 생의 기능과 힘 (불은 물을 끓는 능력을 갖는다) 그리고 내적인 가치와 목적은 배제된다. 생활환경적 차원을 담고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과 생의 실현과정은 근대의 과학의 환원주의적 방법에서 사라진다. 과학으로 환원될 수 없는 풍부한 생활 세계에 대한 경험은 수학공식의 인덱스에 놓이게된다. 그러나 유기체의 총체는 부분이나 개별적인 것으로 환원되지 않고 보다 큰 의미 연관성을 갖는다.
데카르트의 철학
갈릴레이와 동시대에 활동하던 데카르트(1596-1650)는 과학적 방법론을 철학적으로 마음과 물질의 이분화로 개념화했다. 외부의 세계는 공간에 연장된 자기충족적인 물질 또는 실체이며 마음은 생각하는 실체이다.
데카르트는 갈릴레이의 과학을 보편수학의 이념을 통해 근대철학을 구상했다. 갈릴레이와 더불어 자연과학을 모범으로 삼는 지배적인 사고방식이 데카르트 철학에서 시작된다. 수학은 명석판명한 것이며 자연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인간의 몸도 기계처럼 취급된다.
갈릴레이는 인격적인 삶을 이끌어가는 정신과학의 영역 다시 말해 인간의 실천에 근거한 문화적 삶의 총체성을 도외시했다. 마찬가지로 데카르트에게서 세계는 자연과 영혼의 세계로 이분화된다. 연장실체(res extensa)와 정신적인 사유실체 (res cogitans)의 분리개념은 홉즈와 로크(타블라 라사: 마음은 백지수표)에게서 자연주의적(물리학주의) 심리학으로 철학화 되었다. 인간의 마음은 본유관념이 아니라 오로지 감각적 경험으로만 이루어지로 외부의 경험이 마음의 백지수표에 찍혀진다.
세계에 대한 기계론적인 견해가 태동하고, 이후 아이작 뉴턴 (1642-1727)의 물리학에서 자연은 법칙에 따라 작동되는 기계개념 (만유인력의 법칙)으로서 정점에 달했다. 수학은 이러한 자연기계를 예측하는 법칙을 표현한다. 모든 물질의 세계는 자연법칙 즉 인과율로 파악되고 미래가 예측되고 결정된다.
갈릴레이의 관성의 법칙은 물체의 질량의 중심은 외부 힘의 작용하지 않는 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경사면을 따라 공을 굴리는 실험에서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물체의 속도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으로부터 고전 물리학으로의 파라다임 변화를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모든 상태는 정지 상태를 유지하거나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다. 움직이는 사물에는 추진력이 있다. 동일한 높이에서 떨어지는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먼저 떨어진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경사면을 따라 구술실험을 해본 후 경사각이 클 수록 이동거리가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을 알아냈다. 운동하는 물체가 속도를 가감하는 외부의 요소가 없는 한 속도를 유지한다면, 같은 속도에 직선으로 움직이는 운동 (등속직선운동)에는 관성의 법칙이 적용된다. 피사의 사탑에서 1kg 쇠공과 10 kg 쇠공을 떨어뜨렸을 때 두개의 공은 거의 동시에 떨어졌다. 공기저항으로 인해 무거운 공이 조금 일찌 떨어질 뿐이다.
하이데거는 <근대과학, 형이상학, 수학>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의 과학적 태도와 근대 고전 물리학의 차이는 사실과 개념 그리고 원리에 있기 보다는 실험과 계산과 측량의 연구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근대과학의 본질은 수학에 있다. 하이데거는 칸트의 <형이상학의 시작과 자연과학의 원리 서문>을 인용한다. 진정한 과학은 수학에서 찾을 수 있다 (Martin Heidegger Basic Writings, 273. 1).
뉴톤의 운동법칙
뉴톤은 갈렐레이의 관성법칙을 기초로 모든 물체의 운동을 이끌어내는 원인을 힘으로 보았고 수학적 모형을 제시했다. 물체에 작용하는 힘 (F)은 물체의 질량 (m)과 물체의 가속도 (a)로 나타난다. 뉴톤은 갈릴레이의 수학적 방식을 역학과 공학에 적용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뉴톤에게서 철학은 보편과학이며 이것은 제일원리가 된다. 칸트가 자연과학을 언급할 때 그것은 뉴톤의 고전 물리학을 의미한다. 데카르트는 뉴톤의 관성의 법칙을 자신의 < 철학원리>에 수용하고 형이상학적으로 정초했다. 라이프니츠에게서 이것은 형이상학의 법으로 작용했다.
뉴톤은 관찰을 기초로 과학의 방법을 전개했지만, 특히 창조적인 구상력을 통해 떨어지는 사과에서 중력의 법칙을 개념화했다. 두 물질 사이에 서로 당기는 인력은 사과와 지구사에 작용하며 사과는 질량이 큰 땅으로 떨어진다. 이것은 달을 끌어들이는 지구의 중력에서도 나타난다.
거리로 인해 달과 지구는 충돌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찰에 입각해 뉴톤은 수학계산에 입각해 창조적인 구상력을 통해 만유인력의 법칙을 개념화했다. 뉴톤에 의하면 과학의 과제는 물체에 대한 기술에 있으며 미숙한 사변을 피해가야 한다. 실험적인 증거가 없을 경우 우리는 단지 모를 뿐이다. 과학이론은 객관적인 실재를 표상하거나 재현하는 것이며, 물자체에 접근할 수 없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뉴톤의 자연과학의 세계를 지성에 입각한 인식론적 실재론으로 표현된다.
하이데거: 뉴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하이데거에 의하면 뉴톤의 관성의 법칙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공명한다. 그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조응하는 것은 존재자들 안에서 스스로 드러냄 (알레테이아)이기 때문이다. 지식(에피스테메)은 두 가지로 분류되는 데 자연에서 스스로 출현하는 것과, 다른 한편 자연적으로 산출된 것에 관한 지식이다. 여기에 조응하면서 지식의 목적/완성은 달라진다. 자연의 지식은 인간의 지각에 자체상 스스로를 드러내는 현상에 있으며,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과학적 방법의 기본원리를 말한다. 이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귀납적인 방법을 통해 자연현상에서 출현한 것을 추론해내며, 이것은 뉴톤의 과학의 원리와 다르지 않다 (ibid., 282).
이것은 하이데거의 기묘한 주장에 속한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과 정지의 법칙은 갈릴레이-뉴톤의 관성의 법칙과 같은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알레테이아를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존재론으로 탈취하고 근대과학에 모자이크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양자역학에도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프톨레미우스의 과학적 세계관에서 살았다. 그는 하이데거의 손에서 선택되고 변종되어서 코페르니쿠스의 세계에서도 그리고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도 영원히 존재론적 타당성을 갖게 변형된다.
하이데거에게는 존재근원과 현상학에서 보면 자연과학의 인식론적 파라다임 변화와 과학혁명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작과 정지의 법칙은 물체자체의 본성과 힘 (동작의 가능성)에 있다. 힘은 본질이며 존재자체를 말한다. 중세 스콜라철학은 이것을 다음처럼 표현했다: 움직임은 존재로부터 쫒아 나온다 (operari sequitur esse).
아리스토텔레스ㅡ스콜라철학의 원리는 인간의 의지와 힘(디나미스)를 강조하고 자기를 실현하는 목적론을 갖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서 물체의 낙하는 개별물체가 자신의 정지의 장소를 찾아가는 목적으로 설명된다. 불의 자연적 장소는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땅의 자연적 장소는 내려가는 것이다. 동작의 목적이 부각이된다. 비는 식물을 자라게하기 위해서 내린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움직임과 행동은 본질적 본성 (우시아) 즉 존재로부터 쫒아 나온다.
달리 표현하면 본질 (우시아)은 질료와 형상으로 구성되며, 잠재태와 현실태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디나미스와 에네르기아 (활동) 그리고 완성으로 실현된다 (엔텔레키아). 이것은 관성의 법칙과 전혀 다르다. 동작과 정지의 법칙이 물체의 본성과 힘에 있다면 피사의 탑 꼭대기에서 무거운 돌은 당연히 가벼운 돌보다 먼저 떨어져야한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실험에서 이것이 오류임을 입증했다.
더우기 뉴톤의 방정식 F=ma는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사유에 있어서 가장 의대한 진보로 평가되었다. 뉴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알레테이아는 하이데거의 존재사건으로 해결될 수 없다. 그리고 뉴톤의 방정식은 아인슈타인의 에네지 질량 등가원리에선 타당하지 않다. 에너지=질량 ×광속의 제곱.
뉴톤의 고전역학에서 m 질량(물체)은 에너지로 변형되거나 등가가 되지 않는다. 에너지는 질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과학의 발전과 혁명에는 파라다임의 변화와 이전의 존재와 인식론과의 단절이 나타난다. 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이해를 하이데거는 자신의 존재론적 알레테이나 사건으로 환원시킨다.
하이데거의 탈취와 모자이크 방식은 과학철학의 영역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 시대의 자연학의 파라다임은 근대 초기의 갈릴리이-뉴톤의 물리학의 파라다임사이애는 불가공약성이 존재한다.
근대의 과학의 파라다임은 플라톤-아리스토탤레스 파라다임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또는 해석학적 지속성에 서 있지 않다. 과학의 발전에서 역사는 축적된 지식의 진보가 아니라 혁명을 가져온다. 과학의 진리는 개별역사의 시기에 연관된 과학 공동체의 파라다임 (공동의 신념과 가치들, 형이상학적 전제, 도구와 기술 등)에 의해 결정되며 진보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상과학이 수수께끼와 같은 비정상성을 해결하지 못할 때 위기가 발생하며 수정이 불가피해지고 인식론적인 파열과 새로운 과학이 등장한다. 과학 공동체에서 공유되는 파라다임은 과학적 방법과 규칙의 매트릭스가 된다. 자연 관찰과 실험을 통해 네트워크와 패턴으로 현상하며, 자연의 복잡성을 파악하는 데 사고실험과 수학은 여전히 중요하다.
마르쿠제의 후설해석
마르쿠제는 <일차원적 인간> 6장에서 후설의 발생론적 인식론에 주목하고, 후설이 과학적 이성을 사회사적 구조에 착안하는데 관심한다. 여기서 근대과학은 주어진 역사적 실재에 대한 방법론이 된다. 갈릴레이 과학의 본래적 토대를 구성하는 것은 과학이전의 실천에 있다. 이것은 실천의 세계로서 생활세계를 지적하며 갈릴레이는 이것을 간과했다.
생활세계의 실천과 중요성은 이후의 자연과학의 발전에서도 은폐되버리고 자연의 수학은 절대적인 진리를 제공하도 자연을 지배한다는 환상에 빠졌다. 이것은 자연의 무한성울 예견하는 갈릴레이의 기술이며 당대 사회 역사적인 프로젝트가 된다. 자연의 인과율은 응용 수학이 속한다. 그러나 자연과학은 생활세계를 위한 특수한 방법과 기술에 불과하며, 생활세계에 수학의 옷을 입히고 은폐했다. 하지만 우리가 지각하고 경험하고 살아가는 생활세계는 계산되거나 측량될 수 없는 복잡성과 비결정성을 가지고 있다.
후설은 갈릴레이의 기여를 무시하지 않았다. 갈렐레이가 이전의 전통과 급진적 단절을 한다고해도 이전의 지평은 여전히 갈릴레이의 인식론적 단절을 위한 배경이 된다. 역사적 주체성으로서 갈릴레이의 한계와 과학적 방법의 편견이 언급된다. 자연의 지배는 역사 사회학적인 콘텍스트에서 정치권력과 기술생산 메카니즘에서 인간의 지배와 분리되지 않는다 (Marcuse, 94-6).
마르쿠제는 후설의 생활세계이론으로 부터 근대과학의 기술 합리성의 지배와는 다른 새로운 형식의 합리성을 추구한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존재와 당위의 변중법적 관계에 있으며 목적/완성의 빛에서 근대 기술 합리성의 한계를 비판한다. 해방은 억압적인 생산성 (로고스)와 행의 쾌락 (에로스)의 화해에 있다.
그러나 마르쿠제의 한계는 로고스를 단지 지배와 억압으로 파악하고 기술생산의 물화에서 부정적으로 보는데 있다. 로고스의 지배를 제어하기 위해 생의 원리인 에로스를 접합시킨다. 이것은 풀라톤의 <심포지움>에 가깝다. 마르쿠제의 후설독해와 고대 그리스의 로고스와 에로스의 화해는 독창적이지만, 후설의 생활세계이론은 폭넓은 스펙트럼을 갖는다. 후설은 마르쿠제처럼 이성을 법과 지식을 통한 지배로만 파악한 것이 아니라 전통의 침전과 편견 그리고 불명료함 그리고 독단주의에 대한 책임적 비판과 해방의 기획으로 전개했다.
후설: 생활세계의 합리성과 의미토대
후설의 자연과학적 접근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접근과 다르다. 후설은 수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했고 자연과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생물학에서 원초적 생의 근원성을 보았고 현상학적으로 매우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후설의 갈릴레이의 세계의 수학화를 비판한 것은 수학적 방법으로 생활세계의 존재론과 보편지평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는 무한한 양파와 같으며 파헤쳐질 수록 수학의 모델은 어느 단계에서 붕괴될 수 밖에 없다.
후설에 의하면. 보편적 자연법칙성은 경험에 주어진 것이며 자연과학은 이것을 귀납적으로 접근하는 아포스테리오리 한 것이다. 후설의 근대과학과 데카르트에 대한 비판적 평가에서 흥미로운 것은 스피노자에 대한 것이다.
후설은 스피노자의 <윤리학>이 기하학적 방법을 취하지만, 데카르트와는 달리 자연일반을 기계론적으로 다루지 않았다고 말한다. 총체적인 존재일반이 스파노자의 철학 속에 담겨져 있으며 절대적 실체로서의 신과 자연이 모든 양태존재들이 서로 연결된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극복하며 최초의 보편적 존재론을 의미한다 (<위기>, 155).
후설의 스피노자에 대한 철학적 평가는 하이데거와 극명하게 갈린다. 하이데거는 1936년 강연 <쉘링의 인간 자유의 본질>에서 스피노자를 보편수학의 틀에서 완벽한 근대철학의 시스템으로 비판했다. 데카르트의 아류 정도로 폄하된다. 스피노자의 코나투스와 지성적 신의 사랑과 기쁨의 철학은 하이데거의 죽음을 향한 현존재의 불안과 세계로로 던져진 현존재의 영지주의적 구조와는 전혀 다르다.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에서 본질은 존재자들의 영역에 있고 형이상학에 불과하며 존재론적으로 주제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후설에 의하면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보편적 존재론으로서 자연과학과 심리학에 대해 참된 의미체계 즉 생활세계의 차원을 설정할 수 있다. 지각과 지성의 역할은 선한 삶의 열망과 힘 (코나투스)에 기초하며 신에 대한 지성적 사랑을 통해 우주를 덮는다. 스피노자의 신 (또는 자연)-속성-양태의 철학적 틀은 신(능산적 자연)과 자연(소산적 자연)을 이분화하지 않는다.
양태존재자들은 코나투스에 기초해 지각과 지성 그리고 상호주관성에서 몸의 차원을 개방한다. 이런 점에서 스피노자는 후설의 지각의 현상학과 신체 지향성 그리고 공감윤리의 중요성 더 나아가 소산적 자연으로서 생활세계를 선취한다. 이것은 기하학이나 자연과학으로 파악될 수 없다.
어째튼 후설은 신체를 중요하게 파악했고 선한 삶의 열망울 통해 신체를 가진 현존재는 타자와 더불어 접촉을 하며 공감윤리를 발전시키고 생활세계를 공동의 세계로 만들어간다. 로고스와 신체의 화해는 에로스의 생의 원리를 포함하지만 자연과학과 기술합리성은 생활세계에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생활세계
생활세계의 축면에서 나는 후설의 생물학적 관심을 아리스토텔레의 자연철학에 관련 짖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의 아버지로 볼 수 있다. 자연은 생의 환경으로서 작용인으로서 유기체와 동물과 식물에 기능과 계획과 목적에 관여한다. 자연은 생을 종합하는 정체로서 생활세계가 된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의 환경론은 후설의 문화적인 삶으로서의 생활세계를 보충해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다양한 생의 형식은 서로 공통점을 가지며 서로 네트워크처럼 엮어져있다. 물론 아리스트텔레스는 인식론의 영역 구분에 기초해 <정치학>과 <니코마코스 윤리>에서 인간중심의 가치와 목적을 말한다. 동식물의 삶은 존재의 연쇄와 위계를 토대로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한 도구적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 <영혼론> 2.1-4)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생의 공통점과 함께 <형이상학 12.10>에서 인간과 자연의 생의 관계에서 급진적인 단절을 말하지 않는다. 인간은 합리적 영혼을 갖는 동물이며 정의와 법 그리고 지성과 도덕을 상실할 때 최악의 짐승이 되고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환경론적 접근과 중용은 서로 분리되지 않으며 과학 기술의 합리성에 대해 신중한 판단과 실천적 지혜를 제공한다.
후설은 세계의 수학화에 비판적이며, 근대자연과학의 환원주의에 저항한다. 그의 생활세계 개념은 기술지배에 종속되지않고, 세계와 환경의 지평을 제공하는 선험적인 아프리오리로 나타나며, 오히려 역사적 과정과 사회구성안에서 드러나는 부식과 변질에 대한 책임적 비판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변질과 부식은 전통의 침전에 붙잡혀있는 편견과 불명료함으로 인해 발생하며, 자연과학의 지배와 비합리성은 생활세계의 비판에 놓여있다.
후설에게 인식론과 존재론은 상호관련성에 있으며 가치합리성과 신체성 그리고 윤리와 분리되지 않는다. 후설은 기술생산의 사물화를 넘어서서 관계와 의미의 총체성을 향한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연의 해방의 기획으로 안내한다. 후설의 지향성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알레테이나 사건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취한다. 후설은 스피노자에게 공명한다. 마르쿠제의 테제ㅡ기술합리성의 과정은 정치적 지배과정이다ㅡ는 스피노자의 시민국가론과 평등 민주주의에서 반향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