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프만: 우주의 신성한 창조성
카우프만에게서 생물학의 영역은 물리학의 너머에 있으며 유기체 전체의 삶이 부분들과 합력하면서 새로운 생을 창조해나간다. 이것을 카우프만은 철학적으로 칸트의 유기적 총체성으로 부르며, 칸트는 다윈에 앞서 유기체의 앙상블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전체와 부분의 관계에서 전체는 부분의 합계보다 더 크며 새로운 적용범위를 갖는다. 부분은 유기체를 위해 존재하며, 또한 유기체로 의해 살아간다
이러한 유기체적 접근은 세포 내에서 분자의 중합체에서 집단적 자가 촉매집합에서 생의 현상을 강조한다. 유기체가 진화하며 사회 문화적 형식은 유기체의 발전에 기초한다.
종교는 부분들의 영역으로 환원시켜 분석될 수가 없다. 이것은 탑 다운 방식의 창조성이며, 인간의 이성을 넘어서 있고 미리 앞서 예측할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성과 신비 안에서 살아간다.
카우프만의 하나님은 인격적인 창조주가 아니며, 일방적으로 역사에 개입하는 유대-기독교의 하나님을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성과 종교의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는 새로운 글로벌 윤리가 나타난다.
카우프만은 자신의 종교적 자연주의를 통해 하버드 대학 신학부의 고든 카프만과 대화를 열어간다. 우주의 창조성이 신의 신비에 직면하여 종교와 과학의 새로운 챕터를 열어가는 공동토대가 된다.
이러한 창발성의 관점에서 의식은 무로부터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창조하며 자신을 초월하는 것으로 출현한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진화의 일어남을 느끼고 아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학적 접근은 진화와 종교의 문제를 다룰때 네러티브와 제의적 차원을 부여한다.
카우프만: 칸트의 유기체적 사고ㅡ비판적 보충
나의 현상학적 접근은 카우프만의 생물학적 존재론과 물리학의 세계를 거절하는 이원론에 수긍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주의적 존재론에 에포케 (판단중지)를 친다. 이것은 다윈의 자연선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왜냐햐면 생물학주의가 종교의 신성함과 일상성의 사회적 삶을 해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로버트 벨라는 칸트의 유기체 이론을 알고 있다. 기계는 분리한 후 다시 조립할 수 있다. 그러나 유기체는 그럴 경우 죽는다. 다양한 삶의 영역들과 문화 시스템 그리고 다차적 실재들은 살아있는 유기체의 기능을 하며 서로 중첩되며 관여한다(Religion in Human Evolution,114)
시실, 칸트의 유기체적 총체성은 단지 생물학의 세계에만 관련되지 않는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을 구분하고 삶의 다른 형식에 따라 인식론과 도덕 실천과 미학을 구분했다. 그리고 역사의 차원에서 인간의 종교와 존재를 생물학적 유기체로 환원 시키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생물학적 존재론자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인식과 존재 그리고 진리를 구분한다. <판단력 비판>부록 80에서 칸트는 진화론적인 사고를 하며 스피노자 철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했다.
사물의 본래적 근원은 단순한 실체 (스피노자)에 의해 기술되며 그 속성은 자연적인 형식들과 특별한 성격에 관련된다. 자연의 일치의 성격은 목적을 통해 지성적 실체(신)의 속성으로 기술된다. 지성적 실체와 자연적 형식들의 관계는 목적으로 가능해지며, 이것은 목적인으로 언급된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스피노자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를 자신의 철학적 틀에서 회복시킨다. 자연 철학에서 다자인에 의한 활동인은 목적인에 관련된다. 이러한 목적론은 자연의 초감각적 기체 즉 질료안에 내주한다.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인론의 틀에서 에피제네시스 (호프라트 블름멘바하)의 통찰을 검토했다.
에피제네시스에 의하면 자연은 과정의 지속성에서 자체상 생산적이다. 유기체의 실체가 물리학적 설명의 출발이 된다. 자연의 메카니즘은 원초적인 조직의 원리에 예속된다. 생은 비어있는 물질의 자연이 아니라 유기체의 자기조직 원리로 부터 나올 수 있다. 이것은 비결정된 기능이다.
칸트의 에피제네시스에서 자연의 한 개체는 다른 개체에게 목적을 위한 수단 즉 목적에 유리한 적응으로 나가게 한다. 이것은 유기체의 삶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목적이며 지성적인 실체이다. 인간의 합리적 발전은 자유를 사용하면서 궁극적 목적인 문화와 시민사회로 진입한다.
보편사 이념
<보편사 이념과 코스모폴리탄 의도, 1784>에서 칸트는 자연은 인간의 모든 기관들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은 바로 사회안에서 인간의 적대감으로 말한다. 사회의 적대감이 결국 사회의 법적 질서의 원인이 된다.
적대감은 인간의 "비사회적 사회성"을 말한다. 야만의 상태에서 인간은 사회적 가치를 구성하는 문화로 진입한다.
칸트는 자연의 세계에서 욕망과 충족의 체계변화를 역사 사회학적으로 성찰했다. 자연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적대감과 투쟁 다시말해 비사회적 사회성을 칸트는 현실로 수용했다.
호전성과 경쟁의 덧없음, 소유와 지배를 향한 자칠줄 모르는 탐욕 등 ㅡ이런 것들 없이 인간의 탁월한 자연적 능력들은 발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악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연적인 능력의 발전과 새로운 힘의 영향이 나타난다.
칸트의 유기체적 사고는 욕망의 충족의 변화체계에서 합리성의 발전과 자연의 선함에 근거한다. 칸트에게 종교는 도덕 이성에 기초하지만 자연의 숭고미와 도덕 감정에서 신의 드러남이 있다. 종교는 도덕과 미학의 영역에서 발전될 수 있다.
신은 자연적으로 충분하게 창조적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이며 미학의 근거가 된다. 여기서 신과 세계의 형이상학적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칸트의 유기체적 사고와 욕망과 충족의 변화체계에서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역사화시키며 정의와 자유를 통해 코스모폴리턴 방향으로 나간다.
계몽적 태도와 도덕이성은 종교를 정치와 사회를 새롭게 해나가는 혁신적 차원을 갖는다. 칸트의 유기체적 사고와 에피제네시스는 사회의 도덕의 진보에 연결되며 급진적 악과의 투쟁과 정의를 부각시킨다.
자연의 상태에서 생물학적 진화가 가지의 갈라짐의 과정과 종의 다양성의 확장으로 나타나지만 여전히 자연 안에는 종의 집단적인 사멸이 있다.
그러나 문화적 영역에서 인간은 욕망과 충족의 변화체계에서 비사회적 사회성을 경험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의 선함이 인간의 삶을 이끌어간다. 종교의 출현은 도덕과 이성의 근거로서 인간의 세계에서만 나타난다.
종교와 네러티브
종교는 네러티브로 정체성을 유지하며 신화론적 이야기나 상징에 개념적 반성(로고스)을 담는다. 인간의 합리성은 종교의 네러티브와 제의에 관련되지만 여전히 비판적 기능을 수행한다. 칸트는 여전히 계몽적 태도를 종교에서 포기하지 않는다.
종교는 문화적-언어적 시스템으로서 비판적 이성과 개념적 재현을 담지만, 여전히 상징적 제의와 종교적 네러티브와 윤리적 실천을 종교의 삶에서 구체화 시킨다. 종교적 실천과 헌신과 유리된 비판적 합리성 (이론적 문화)은 없다.
종교와 문화는 생활세계에 관련되며 생물학의 유기체가 아니라 종교의 네러티브와 제의 그리고 실천과 미학에서 이론적 문화 (개념적 명료함)에서 발전한다.
종교는 역사에서 부정적인 기능을 하지만 종교적 네러티브는 내재적 비판의 근거로서 종교의 오류와 부패를 바로잡고 새로운 생을 창조하는 연대적 기능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