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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대화: 화이트헤드

content6462 2026. 1. 28. 07:10

교육철학의 중요성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에는 선한 삶과 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차원을 담고있다. 우리는 생각하면서 산다. 학생들의 마음은 성장하는 유기체와 같으며, 외부의 이상한 이념들로 무자비게 포장되어야 할 포장박스가 아니다. 삶을 개선하려면 생각을 개선해야 한다. 교육의 주제는 모든 영역과 드러남에서 선한 삶에 있다. 이것을 향해 학생들의 마음이 자기 발전할수 있도록 자극하고 인도해야 한다.

 

자기발전의 교육의 단계는 유기체적이며 사이클 과정에 있다; 1) 낭만적 단계 (경이로움에 의한 자유로운 탐구의 단계), 2) 정교함의 단계 (기술과 상세한 지식의 습득에 의한 훈련) 3) 일반화 단계 (술과 지식의 적용)ㅡ이것은 교육의 리듬이다.

 

이러한 교육의 리듬에 기초해 화이트헤드는 문학적 구성과 과학적 구성 그리고 기술적 구성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아것은 교육혁명이며 과학혁명과 더불어 같이간다. 이런 점에서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우주와 생명에 대한 형이상학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실천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는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실천철학에서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데카르트의 다른 차원과 칸트의 유기체적 사고를  피해갔다. 

 

데카르트를 넘어서는 삶의 성찰

데카르트에 대한 비판적 평가에서 남겨져있는 것은 그의 종교와 도덕 철학적 사유이며, 보편수학이 과연 모든 존재자들의 총체성을 다룰 수 있는 가 하는 문제이다. 수학적 방법에 앞서 인간의 인식은 역사적 영향과 사회 문화적 삶의 조건 그리고 권력지배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수학은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이것을 하이데거처럼 비난 할 이유가 없다. 통계학은 여전히 경제학이나 사회학이나 인류학에서도 유용하다. 리카토스의 관점에서 본다면 데카르트의 리서치 프로그램에서 하드 코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하드 코어 주변에서 보호 벨트를 형성하는 보조 가설이 있다.

리서치 프로그램의 성공여부는 이것이 문제의 변화를 이전의 철학이나 과학 보다 더 많은 경험적 사례들을 진보적으로 다루는 지 아니면 후퇴하고 변질되는 지로 판가름 난다(Lakatos, Criticism and the Methodology of Scientific Research, 169).

만일 보조이론이 재해석을 수행하고 새로운 사실들을 산출하고 독립적으로 테스트 된다면, 형이상학은 과학적이며 경험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진보적인 문제해결과 변화를 가져온다. 진보적인 형이상학이론이 보조이론과 보조벨트에의해 긍정적인 새로움을 드러낸다면, 데카르트의 과학철학은 뉴턴 중력이론에 의해 대처되거나 제거될 수 없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에 의해 뉴턴은 제거되어야 한다. 과학철학은 순진한 반증주의를 기초로 정당성과 논박을 일반화하는 시도에 반기를 든다.

데카르트 재해석

데카르트 철학에 대한 재해석에서 중요한 것은 데카르트 텍스트에서 사전봉쇄된 내용을 고고학적으로 해명하고 의미론적인 지평을 확대하는데 있다. 데카르트에게 신의 무한성 이념과 인간과 세계의 관계는 리서치 프로그램에 속하며 의심의 태도는 이러한 리서치 프로그램의 하드 코어를 위한 보호벨트로 작동할 수 있다. 의심의 태도는 보호벨트로서 변화된 상황에서 하드 코어를 위해 비판적으로 변형될 수 있다.

21세기 과학의 영역에서 데카르트는 특히 양자 역학에서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토마스 쿤의 파라다임의 변화는 데카르트-뉴턴 그리고 아인슈타인을 거쳐 양자 물리학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뉴턴이 적용되는 삶의 형식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들의 리서치 프로그램이 정당성을 갖는 철학과 과학의 영역들이 존재한다.

이 점에서 나는 언어와 문화형식의 상관관계를 과학철학의 리서치 프로그램 (라카토스)과 파라다임 변화(쿤)에 연관짖는다. 그리고 경쟁하는 리서치 프로그램들에서 순진한 반증주의와 참/거짓의 일반화에 의해 사전봉쇄된 내용들을 고고학적으로 해명하고 두텁고 세밀한 독해를 시도한다.

과학의 담론은 과학 공동체의 문화적 삶의 형식에 엮어지며, 여전히 비결정된 것이 삶의 자리에 들어와있으며, 과학적 에피스테메는 문화와 사회적 삶의 형식에따라 구분되어 평가 될 필요가 있다.

언어와 문화의 상관관계에서 데카르트의 철학은 의심의 태도와 함께 신의 무한성과 타자의 윤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이성철학은 기존의 세계에 대해 판단중지를 하며 태도의 변경을 통해 상호주관적인 윤리와 신과 세계의 관계를 재설정할 수 있다. 신의 무한성은 나의 이성에 포로가 되지 않고 타자와 자연의 생에서 새롭게 나타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과거의 전통과 현재가 중첩되는 지평에서 미래를 향한 새로운 스펙트럼이 나타난다.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진리는 실험과 방법을 통해 여전히 발견될 것이며, 인문학의 영역에서 진리는 과거와 대화와 비판을 통해 해석되고 열려진다.

리서치 프로그램과 파라다임 변화의 접합을 무시할때 성급한 포스트 모던해체는 삶의 복잡성과 다차적 영역들을 간과하게 된다. 해체의 지름길은 종종 소피스트적인 허구와 무지로 드러난다.

 

세포의 오토포이에시스: 화이트헤드를 너머서기 

 

진리와 의미는 화이트헤드가 주장하듯, 주관적 지식·감정이나 현실태의 ‘느낌’에 근거해 우주 만물이 서로 얽혀 통합된 세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파악되기 어렵다. 화이트헤드는 돌멩이와 같은 무기물이 어떻게 느낌을 가질 수 있는지 스스로 체감할 수 있었을까. 그의 체계에서 현실태의 포착(prehension)과 합생(concrescence)은 과거와 현재가 통합되며 창조적 진화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포착은 과거 현실태를 현재의 주체가 ‘느끼는’ 작용을 의미하고, 합생은 이러한 다차적 현실태들이 느낌을 매개로 하나의 구체적 현실태로 통합되는 과정을 지시한다.
만일 포착이 경험의 기본 단위이며, 현실태가 환경으로부터 주어지는 자료와 자극을 느끼고 과거의 느낌을 자기 안으로 통합한다면, 이는 의식의 차원을 넘어 물리적 느낌까지 포함하는 개념이 된다. 이러한 포착의 느낌은 주체와 객체의 이분화를 매개하며, 객관적 사실을 주체의 주관적 경험으로 변형한다. 합생의 과정에서 과거의 느낌은 새로운 창조적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현실태는 만족의 단계에 도달함으로써 완성된다. 이렇게 완성된 현실태는 미래를 위한 객관적 요소가 되며, 우주의 사물들은 이러한 통합을 통해 새로운 하나로 등장한다.
철학적으로 보면, 화이트헤드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의 잠재태–현실태의 운동과 다윈의 진화론을 ‘느낌의 미학’에 입각한 우주적 형이상학으로 재구성한다. 그의 우주론적 느낌은 스토아 철학의 우주적 이성을 참조하면서도 이를 미학적·경험적 차원으로 변형한다. 화이트헤드의 우주론적 형이상학에서 모든 만물의 느낌은 과정적 합생을 통해 하나로 통합되며, 만족, 새로움, 지속적 창조성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진화는 과연 지속적인 창조의 과정인가. 만일 세포 유기체가 포착의 느낌을 지니고 합생을 통해 만족의 단계에 도달한다면, 여기서 완성된 현실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백질이나 피부조직과 같은 구체적 산물을 가리키는가. 이것이 다음 단계 혹은 미래 생명의 전개를 위한 객관적 현실태가 되는가. 과연 세포가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것처럼 지속적 창조성과 만족을 통해 전일적 새로움을 산출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생명은 안정적으로 존속할 수 없을 것이다.
세포는 코어 보존 과정—예컨대 크로마틴 리모델링—과 촉진된 변이(facilitated variation)를 통해 ‘지속적으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준거적 시스템 안에서 네트워크처럼 작동한다. 세포의 핵심 구조는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 평형 상태를 유지해 왔으며, 촉진된 변이는 분자 수준에서 효소 연결망이나 신호전달 체계를 통해 유기체 발달의 기반을 제공한다. 또한 세포막은 다른 유기체와의 ‘닫힘’을 의미하며 경계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세포는 단백질 네트워크와 같은 세포 외부 구조 및 다른 유기체의 세포와 신호물질을 주고받는다. 다시 말해, 구조적 결합을 통해 세포의 오토포이에시스는 환경과의 공동구성을 이루며 생명을 유지한다. 세포의 시스템과 구조가 생명을 결정하는 요인이며, 과정은 이러한 유기체적 네트워크에 속하는 하나의 국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