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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대화: 가이아 이론과 시스템 사고

content6462 2025. 12. 30. 11:47

가이아 이론과 자기 생산성

 

가이아 이론은 1970년대 영국의 환경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미국의 여성 미생물학자인 린 마굴리스와 함께 내놓은 원리이다. 이것은 지구를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로 서 스스로 변화하고 진화해 나가는 실재로 파악한다. 가이아란 고대 그리스인들이 대지의 여신을 부른 이름인데, 지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와 지구에 살고있는 생물, 대기권, 대양, 토양 등을 포함해서 신성한 지적인 존재를 칭한다.

 

생태계를 총괄하는 생물권은 지구상의 생명체 영역으로서 대양의 5-6마일 정도 하부에서부터 대기권의 10 km 까지 뻗쳐있다. 지구의 생은 대기권의 보호층으로 둘러싸여있다. 이러한 보호층이 지구를 자외선과 다른 해로운 영향으로부터 보호한다. 지구의 온도를 조절해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이아는 지구의 생을 최적한 조건으로 인도한다.

 

대기권과 암석들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에 의해 형성되고 변형된다. 대기권은 생물권의 대사과정에서 만들어지고 변형되고 유지된다. 박테리아가 대사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며 화학반응에 영향을 미치며, 마치 세포에서 효소처럼 촉매역할을 한다. 대기권은 세포막에 비유할 수가있고, 지구적인 네트워크을 통합하는 기능을 한다. 생물권은 지구의 생을 평형상태로 유지해줄 수 있는 역동적인 순응조절 시스템이다.

 

이러한 가이아 시스템은 자기 생산적(오토포이에시스)이며, 무생물은 유기적인 생물로 더 나아가 토양과 대양 그리고 대기로 연결된다. 지구는 생물과 무생물의 복합체로 구성된 거대한 유기체가 된다. 생물권과 대기권, 대양과 토양은 일치의 복잡성을 이루며, 이러한 총체성은 피드백과 사이버네틱스 시스템을 통해 생명에 적합한 물리적, 화학적 환경을 형성한다.

 

가이아의 네트워크의 모든 구성분들은 대기권의 환경을 포함하여 이러한 대사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변형되고 스스로 산출된다. 지구의 생명 사슬 안에서 무기물과 유기물의 복잡한 상호작용은 지구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자기조절 적용을 통해서 해양 염분의 유지, 대기중 산소와 탄소농도 유지, 또는 지구 표면 온도조절을 한다. 이것은 가이아 시스템의 특징에 속한다.

 

살아있는 것들은 암석에서 나오고 암석으로 돌아간다! 대양과 토양 그리고 공기의 구성분들과 생물권의 모든 유기물은 지구의 생산과 변형과정에 의해 끊임없이 관련되며 영속화가 된다. 지구의 푸른 녹은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자기생산적이다. 가이아 네트워크에서 식물과 동물과 인간은 지구상에 뒤늦게 출현한 존재들이다.

 

가이아 이론을 지지하는 환경론자들은 지속가능한 발전보다는 후퇴가 더 낳은 대책일 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에도 취약점은 있다. 살아있는 유기체들의 자기 생산, 복잡성의 과학, 그리고 소산구조(dissipative structures)를 통한 새로운 질서의 출현에 별다른 주목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격적이고 질투심이 많은 고대 신의 이름을 빌려와 우주적 삶의 자기조절과 사이버네틱스 평형상태에 지나치게 주목한다.

 

엔트로피 현상과 소산구조

 

일리야 프리고진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자기조직과 생산성에 구조적 차원을 개방한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출신의 물리화학자이며 벨기에와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197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프리고진에 의하면 열역학 제2 법칙은 다윈의 진화와는 양립되지 않는다. 프리고진은 슈뢰딩거의 입장을 지지하고 보충 설명해준다.

 

자기조직은 평형상태가 아닌 열린 환경에서 에너지와 물질대사의 공급을 통해 나타나는데, 새로운 구조와 질서는 소산구조로서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불안정한 비평형 상태 즉 엔트로피 (무질서)에서 발생한다.

 

소산구조가 자기 조직화에 의존되고 구성된다면, 소산구조가 열린 환경으로부터 유입하는 에너지는 시스템 자체 안에서 구조를 만들어간다. 이것은 생명자체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구조를 만들어가고 엔트로피를 방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화학반응의 일종인 자동 촉매반응(autocatalysis)이다.

 

소산구조와 자기 조직화는 초기단계의 변화 (임계점)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며 질서와 무질서 또는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복잡한 조직을 생산할 수 있다. 많은 시스템들은 비일직선적인 역동성을 드러냐며 다윈의 진화론처럼 진보하지 않는다. 시스템의 구성분들은 일직선상이 아니라 복잡하게 연결되어있고, 피드백 회로로 정보와 소통이 교환된다.

 

오히려 열역학의 비평형상태 즉 열린 시스템 (토네이도, 세포,유기체, 생태학적 공동체, 경제 시스템 등)에서 출현하는 생의 현상은 다윈의 지질학적 진화와 위계질서와는 다르다. 내적 구조를 형성하는 것은 열역학 제 2법칙에 근거한 열린 시스템이다.

 

소산구조는 저하된 에너지를 방출하지만, 에너지-물질의 이동과 기울기가 붕괴되면 다시 채워져야 살 수 있다. 예를들어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한 세포는 죽는다. 소산구조는 열린 환경에서 삶의 과정은 안정상태가 아니라 에너지와 물질이 공급되고 증가되면서 비평행 상태에서 구조와 질서 분산되고 소비되고 사라진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새로운 질서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에너지가 유입될 때 이것은 시스템을 평형상태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고 자동촉매적인 구조를 형성한다. 이것은 새롭고 보다 효율적인 평형상태의 질서를 만들어낸다.

 

베나르 대류 (the Bernard Convection)의 경우를 볼 수 있다. 냄비를 밑에서 가열하면 커다란 온도 이동에서 열이 극대화되면 새로운 분자의 질서가 나타난다. 이러한 대류현상에서 규칙적인 6각형의 세포 즉 베나르의 세포가 출현한다. 고온의 열의 요동을 통해 불안정성이 나타나지만 동시에 베나르 세포와 같은 자기 조직화 현상을 드러낸다.

 

이것은 창조과학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열역학 법칙과 진화의 반립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산구조는 열역학 제 2법칙의 파괴가 아니라 결과로서 즉 열린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타난다.

 

살아있는 조직의 자기 생산성은 삶의 과정에서 열린 환경과의 피드백 회로를 통해 새로운 구조와 질서로 출현한다. 삶의 과정은 조직의 패턴과 구조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간략히 말하면 자연이나 인류의 삶은 닫혀진 상태가 아니라 열린 상태에서 새로운 영향과 도전을 통해 새로운 삶의 질서로 발전한다.

 

그러나 닫혀진 상태에서 이러한 도전과 영향은 오히려 부패와 변질로 갈 수 있다. 이런 과학적 관점은 전쟁이 열린 시스템을 교란하는 주범이며, 인류와 자연의 삶을 부패와 변질로 몰아간다.

 

우리는 흐르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프리고진에 의하면 시간은 불가역적이다. 시간은 화살처럼 시위가 당겨져 날아가면 목표를 향해서 간다. 열역학 제2법칙이 이것을 말한다. 밀폐된 공간에서 따뜻한 음식은 식고 부패할 수 밖에 없다.

 

자연현상은 무질서의 정도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뜨거운 커피를 방안에 두면 온도가 낮은 주변으로 열이 전달되어 커피는 식게된다. 열은 고온에서 저온으로 이동하여 평형을 이룬다. 이것은 불가역적이다. 왜냐하면 식어버린 커피는 다시 뜨거운 커피로 복귀될 수가 없다.

 

초기 우주는 엔트로피가 낮은 낮은 질서정연한 상태였지만 (따뜻한 커피처럼) 시간이 무한대로 흘러가면 언젠가는 모든 온도가 같아지고 모든 물질이 평형상태가 되는 즉 우주의 종말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생명 현상은 소산구조적이며 자연의 메카니즘은 요동침에 있다.

 

새로운 복합적인 질서가 출현할 수도 있다. 생명은 무생명의 요동침에서 온다. 파충류는 어류의 요동침에서, 조류는 파충류의 요동침애서 인간은 포유동물의 요동침에서 갈라치기 (bifurcation)하면서 나타난다.

 

이것은 우주의 생이 비결정론적임을 보여주며, 우주 자체는 역동적이며 태양의 시스템안에서 팽창하며 화살처럼 나간다. 은하계는 마치 젖이 흐르는 것처럼 뿌옇게 나타나지만 태양 시스템을 포함한다. 블랙홀도 존재한다. 무수한 은하들이 존재한다. 에드윈 허블은 태양도 지구처럼 은하 주위를 공전한다고 말한다.

 

우주는 에피제네틱 곧 후생 유전적이며, 또 역사적이다. 우주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환경의 요소가 중요하다. 유전자가 인간의 삶을 결정하지 않는 것처럼, 우주 또한 결정론적이 아니라 시간의 화살과 더불어 비결정적으로 그리고 복합적으로 움직인다.

 

프로렙시스 원리와 새로운 생명

 

존재론적으로 우주는 미래로 열려져 있지 과거의 자연의 삶으로 회귀하지 않는다. 자연과 역사는 둘 다 하나님의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프로렙시스적 원리는 시스템적 사고와 소산구조 그리고 생태학적 입장을 매개하고 종합한다.

 

이것은 과거 소급적인 차원 즉 아남네스적인 차원을 포괄한다. 프로렙시스적 차원에서 과거 소급적 존재론은 존재하는 것은 미래를 갖는다고 파악한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미래 즉 하늘과 새 땅의 계기가 현재로 들어오는 것이다. 유대 기독교 전통에서 미래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준 선물로 파악된다. 그러나 그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화해와 인정의 복음과 더불어 시작된다.

 

모든 피조물들의 삶은 갱신되며 이들은 상호의존적이며 관련성 가운데 있다. 생태학적인 갱신은 유대 기독교 전통 이외에도 유교나 불교 그리고 이슬람에서도 작동한다. 살아있는 지구의 삶을 더 이상 고삐 풀린 성장, 무한 경쟁, 자유방임이라는 탐욕의 논리로 착취를 해서는 안된다.

 

모든 피조물들의 삶은 생의 영역에서 공생과 매개 그리고 협력을 보여준다. 미토콘드리아와 세포핵이 서로 공생한다. 유전자의 진행을 히스톤의 단백질이 매개하고 변이 상태를 치유하면서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

 

이러한 에피제네틱은 생활세계를 문화와 우주적 생의 창발성에 연결하며 프로렙시스의 원리는 "인식론적인 문화 환경”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수 많은 효소들의 매개 역할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세포의 생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거절한다.다윈은 자연선택을 경쟁과 생존투쟁 그리고 적자생존에서 말을 했지만 무작위적 변이를 해명하지 못했다. 자연의 생에는 새로움의 출현과 유기체의 발전이 환경문화와 더불어 공생과 협력으로 나타난다.

 

지구의 네트워크

 

복접성의 과학에서 볼 때 세포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가이아와 같은 인격적인 신성의 역할은 없다. DNA-RNA-단백질의 협성과정에서 나타나는 단백질 효소의 촉매과정이 중요하며, 이러한 피드백 회로가 자기를 복제하고 재생산하며 새로운 질서로 발전한다.

 

가이아의 자기 조절이 아니라, 유기체의 생은 네트워크안에 상호연관되고, 복잡성으로 인해 미래를 예견할 수 없을 정도로 기능적으로 분화된다. 이런 복잡성의 시스템에서 볼 때 가이아는 거대한 사이버네틱스 순환으로 파악될 수가있고, 지구의 생물체 전체가 자신의 생존에 맞게 환경을 변화시키고 기후를 조절한다.

 

이러한 공동 진화 내지 창조 (자기 생산성)는 자연 선택이론을 통해 생물개체들의 경쟁과 적자생존이라는 다윈의 이론을 거절한다. 생물권은 자기생산적 시스템이며 스스로 생을 유지 한다. 범지구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생물종들의 협력과 공생이 강조된다.

 

이것은 가이아의 형이상학이 아니라, 자기생산적인 공생의 지구를 말하며, 여기서 유기체들간의 상호작용에서 새로움과 살아있는 시스템이 출현한다. 지구의 삶은 단순히 자기조절을 통해 평형을 유지하는 가이아 형이상학을 넘어서, 살아있는 자기생산적 유기체로 드러난다.

 

세포의 자기 생산성

 

세포의 자기생산성과 효소와 촉매와 매개과정에서 공생의 삶을 보여주는 자연의 삶에서 본다. 이러한 세포내의 삶에서 나타나는 자기생산성은 인간의 의식이나 사회 시스템 전반에 걸쳐 작동되기도 한다.

 

앞서 본 것처럼 진화는 더 이상 다윈이 말한 것처럼 자연선택을 통해 생존경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미 세포의 세계에서 우리는 개별적인 요소들이 공동으로 협력하고 공생의 미학을 본다. 물론 자연과학자들로부터 배우는 중요한 통찰은 미래는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지만, 자연의 삶에는 아름다움과 복잡성이 존재한다.

 

이것은 공공선의 차원을 지적한다.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범 지구적인 삶을 지켜나가기 위해 과학자들이 하는 예언적인 경고와 정치가들의 책임/심정윤리 그리고 세계종교들과의 협력은 시급하다. 사자가 양과 함께 눕는 세상 (이사야 11장)은 단순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사자와 양들이 공생하는 새로운 자연질서를 그린다.

 

자연과의 새로운 대화가 요청된다

 

자연은 더 이상 지배와 정복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처럼 외부의 세계에 예민하며 조그만 변동에도 영향을 쉽게 받는다. 자연의 삶은 인간에게 대화와 존중과 협력을 요구한다. 세계는 더 이상 데카르트나 뉴톤이 꿈꾸던 기계와 같은 것이 아니라 자기생산성과 소산구조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자기 생산성과 네트워크의 협력에서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서 창조적이며 도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도덕적인 책임은 개인의 이성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우주 그리고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시민사회가 기능적인 분화와 합리화 과정을 통해 도덕적으로 진보한다.

 

미래는 지금 여기서 변혁된 실제로 드러난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여전히 구태한 존재론과 인식론에 머물러 닫혀버린 삶을 영위할 때 부패와 변질은 필연적인 것이 된다. 문화적 침전과 하비투스에 들어와있는 반지성주의나 집단 나르시즘에서 돌아서서 끊임없는 내재적 비판과 선한 삶을 형한 열망과 해방의 기획을 위해 전진해야한다.

 

실천은 자신의 침전과 히비투스로부터 돌아서지 않을 경우 큐피디타스의 죽음충동에 의해 더 변질 되거나 나에게 부매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과거의 잘못된 마음의 습관에서 돌아서 인정과 화해 그리고 자유의 진보를 향해 새로운 마음의 습관과 공공선의 정의를 새롭게 시작해야한다. 이론과 실천은 처음부터 분열된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사용하는 담론 안에서나의 의식은 영향을 받고 의미있는 실천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