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 근대 물리학 비판
하이데거는 <근대과학, 형이상학, 수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 입각해 뉴톤의 물리학을 비판했다. 뉴톤의 관성의 법칙은 이전 갈릴레이의 실험에서 기인한다. 피사의 탑의 실험에서 갈릴레이는 물체들이ㅡ경 중의 상관없이ㅡ동일하게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낙차의 시간의 차이는 오로지 공기의 저항으로 인해 온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스콜라주의 주장ㅡ물체는 본성에 따라 움직이며 무거운 것은 밑으로, 가벼운 곳은 위로 올라간다ㅡ을 뒤집는다. 무거운 물체는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빨리 땅에 떨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 의하면 네 가지 요소ㅡ흙, 공기, 불, 물ㅡ은 자연에서 위계질서를 갖는다. 흙은 바닥에 속하며, 물은 위에 속하며 공기는 불위에 그리고 불은 공기위에 있다. 무거운 물체가 땅의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이것이 흙으로 만들어졌고 자신의 본래의 자리를 찾아간다. 불이 하늘로 올라가는 이유는 공기위에있는 자기 자리를 찾아서 가기 때문이다. 깃털이 돌보다 천천히 떨어지는 이유는 깃털은 흙으로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피사의 탑의 실험에서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먼저 낙하하는 이유는 공기의 저항에 있다고 보았다. 공기의 저항이 없다면 모든 물체는 동시에 낙하한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갈릴레이의 관성의 법칙과 적대자들의 견해는 동일한 사건을 다르게 보고 해석했다고 말한다. 물체의 본질과 운동의 본성을 다루는 문제에서 하이데거는 플라톤을 인용하면서, 모든 물체들은 같으며 속도는 특별하지 않다고 말한다. 모든 장소와 또한 모든 계기는 서로 같다. 모든 힘은 오직 동작의 변화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 동작의 변화는 장소의 변화로 이해된다. 자연적인 과정에서 질량의 움직임은 시공간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물체의 내적 가능성과는 다르다. 오히려 자연은 시공간에서 움직임의 상황에 놓여있는 영역이 된다. 자연적인 물체들은 특질과 힘과 가능성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시공간의 영역에서 질량의 측정과 작용하는 힘에서 스스로를 들어낸다. 근대 물리학은 실험과 수학의 투사를 통해 고대 그리스적 사유를 해명했다 (Heidegger, 291-2).
그러나 하이데거의 주장은 의문의 여지가 많다. 만일 플라톤이 갈릴레이의 관성의 법칙을 선취했다면 왜 중세후기에서 플라톤의 자연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 났는가? 중세신학에서 플라톤-어거스틴의 입장은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갈릴레이가 플라톤의 영향을 받고 관성의 법칙울 주장했다면 하이데거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플라톤의 영향을 받고 관성의 법칙을 수립했다는 것은 입증하기 어렵다.
하이데거는 아리스토텔레스 천체 자연학을 뉴톤의 <수학원리, Principa matematica>와 갈릴레이와 비교 검토하면서 플라톤을 이끌어냈다. 플라톤은 이미 갈릴레이의 관성의 법칙을 선취한 것처럼 해석된다. 근대과학은 명제와 자명한 지식에 대한 의지에 근거한다. 그것은 보편적으로 타당한 토대나 청사진을 투사한다.
존재자 일반의 본질은 존재자들을 존재자들로 있게 하는 것인데, 이것은 수학이 아니라 사유에서만 접근될 수 있다. 수학은 좁은 의미에서 자명한 지식에 대한 응답이지 결코 이러한 지식의 근거라 욀 수 없다. 하이데거는 수학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분석하고 근대과학과 형이상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수학의 지배시대에서 현존재의 기본입장은 무엇인가? 수학은 어떻게 현존재를 형이상학적으로 규정하는가? (ibid., 295).
하이데거의 평가에 의하면 근대의 자연과학과 수학 그리고 근대철학의 형이상학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칸트)은 넓은 의미에서 수학의 뿌리에서 부터 출현하고 존재자들의 존재에 접근한다. 데카르트의 의심하는 나는 인간주체로서 명석판명한 아르키메데스 점으로서 그의 철학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물리학에 대한 이해는 데카르트-뉴턴의 수준에 머문다. 칸트는 유기체적 사고를 발전시키고 에피제네시스를 자신의 비판철학에서 개념화했다. 전체는 부분의 합계보다 더 크고 부뷴과는 다른 특징을 갖는다. 칸트는 오늘날 슈트워트 카우프만의 복잡계와 생의 창발성이론으로 개념화된다.
하이데거는 생물학에서 나타난 유기체와 시스템의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1930년대 하이데거 시대에 생물학의 분야에서 유기체에 대한 시스템적 사고는 전체와 부분의 연관성을 주장하면서 데카르트의 분석적 사유를 넘어선지 오래다. 전체가 부분에 의해 분석된다는 데카르트적 방식은 시스템 사고의 콘텍스트적이며 생태학적 파라다임에서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근대과학의 문제는 하이데거가 근시안적으로 생각한 것처럼 데카르트-뉴턴의 수학적 모델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적 파라다임은 살아있는 유기체를 관찰하고 실험하면서 생의 원초적 형식이 네트워크에 있음을 발견한데서 나타난다.
더우기 하이데거의 시대에 하이젠베르크는 <물리학과 철학>에서 데카르트의 방법을 넘어섰다. 고전 물리학의 토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데카르트가 세웠던 확실한 토대는 더 이상 없다.
고대와 중세에서 근대 물리학의 이행에서 물체들은 질량으로, 장소는 위치로, 동작은 관성으로 경향성은 힘으로 변화된다. 뉴턴의 법칙은 양자의 세계에서 적용될 수 없다. 닐스 보어는 하이데거가 강력하게 비판한 칸트의 물자체 이론을 자신의 양자이론에 수용했다.
뉴턴의 물리학은 관찰자와는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물자체를 기술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칸트의 인식론에서 뉴턴의 물리학은 인과율의 범주를 통해 세계를 기계처럼 산출하며 지성의 표상에 머문다. 그러나 칸트애개서 인간의 인식은 미래를 예측하거나 또는 존재론적으로도 물자체를 알 수 없다. 칸트의 형이상학은 뉴턴의 수학적 투사를 넘어선다 (Barbour, Religion and Science, 168).
그러나 하이데거는 존재자체를 알레테이아 사건으로 돌출한다. 양자의 세계에서 전자는 입자와 파동으로 관찰된다. 입자를 입자로 파동을 파동으로 드러나게 하는 존재사건은 무엇인가? 네트워크의 사고는 하이데거의 원자론적인 현존재와 이와 관련된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사건과는 거리가 멀다. 진리는 알레테이아가 아니라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개연성과 비결정성으로 나타난다.
숲에서 모든 나무들의 뿌리는 서로 연결되어 뿌리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개별적인 나무들 사이에 명확한 경계는 없다. 나무가 과학자의 지각으로 들어올 때 그것은 또한 과학적 관찰과 측량방법에 의존된다. 하이젠베르크에 의하면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자연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자연이 과학자의 질문과 방법에 드러난다 (Capra, The Web of Life, 40).
이러한 인식론의 문화는 네트워크적 사고에 입각한 질문의 방식이며 오히려 현상학적인 특징을 갖는다. 과학은 진리에 대해 잠정적인 답변을 통해 보다 예민하고 깊은 질문에 접근하며 자연현상의 본질에 점차적으로 접근한다.
근대과학과 기술의 문제는 단지 수학적 투사에 있기 보다는 자연을 지배하는 방식에 있다. 자연은 죽은 물체로 다루어지고 무제한적으로 인간의 유용성과 자본축적을 위해 착취된다. 이것은 단순히 과학적 실증주의나 기술지배 그리고 수학적 투사로 이해될 수 없다.
오히려 자연과학자들은 자연의 생과 신비함을 언급한다. 자연은 더 이상 평형적이지도 않으며 일직선으로 나가지도 않으며 비결정성으로 조직 되어있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으며 비결정성이 지배한다. 더우기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생의 원조적 현상과 출현이론 그리고 진화 이론에는 접근 조차도 할 수 없는 인간학적이며 존재론적인 틀에 빠져있다.
생의 비결정성: 열역학 법칙과 유기체의 진화
생물학적 시스템은 열역학 법칙을 따른다. 화학작용의 변화는 단백질 효소의 촉매에 의해 구조와 에너지에서 나타난다. 열역학의 제한성을 벗어나면 세포나 세포로 인해 만들어진 (세포 덩어리) 조직과 유기체는 타버린다.
맥스웰이 열역학 법칙을 물리학에서 발전시켰다면, 케임브리지 대학의 생화학자 프레드릭 홉킨슨은 열역학 법칙을 생물학적 유기체에 적용시켰다. 열역학 제 2 법칙에 의하면 향수병을 열면 향수가 방안으로 방출되고 방안을 채운다.
그러나 분자들은 다시 병안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닫힌 시스템 안에서 질서와 정보는 시간이 흐르면서 방출되며 무질서의 양의 증가로 인해 소산된다. 과거와 현재는 구분되며, 열역학 제 2법칙은 밀폐된 방안에서 엔트로피 (무질서)의 증가를 말한다.
살아있는 유기체는 원자와 분자의 개연성과는 달리 질서와 정보의 고차적인 정도를 가지고 있다. 살아있는 유기체는 열린 환경으로 부터 지속적인 에네지와 생에 필요한 자료들을 받기 때문에 열역학 법칙에 의해 파괴되지 않는다. 물리학에서 자기조직 시스템은 변화의 임계점과 무질서에 의헤 교란될때 비평형상태에서 높은 수준의 질서가 출현한다 (베나드 대류 세포).
이것은 일리야 프리고진의 비평형 열역학 이론이며 소산구조의 성격을 설명한다. 흐르는 강물에서 요동이 일어날 때 소용돌이가 출현하며, 밑에서 부터 냄비의 물을 끓으면 고온의 열이 임계점에 도달할때 대류세포에서 새로운 육각형의 패턴이 나타난다. 조그만 요동이 확장될 때 새롭고 보다 복잡한 질서로 이행된다.
대류세포는 시계방향이나 또는 반대방향으로 갈 수 있다. 길들을 갈라치는 지점이 존재하며, 길의 선택은 매우 조그만 요동에 의해 나타나는 우연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제 하나의 결정적인 예측은 불가능하며, 다차적인 발생체가 비평형적이며 불안정한 상태에서 출현한다.
분자의 영역에서 자기 조직적 시스템과 구성은 생의 창발의 첫 번째 스텝이다. 법칙과 우연의 복잡한 상호 작용에서 결정론과 환원주의는 이제 어렵다. 이러한 유기체의 복잡성에서 볼 때, 단백질의 합성을 통한 발현형질은 유전형질과는 달리 생명체에서 유전정보를 통해 세포와 조직과 개체에 단백질과 당을 공급한다.
이것은 생산적인 기능의 형질을 말한다. 발현형질은 유기체의 형태와 발달과정, 생화학적이며 생리학적 특성 그리고 행동과 행동의 산물을 포함한다. 이러한 표현형은 유전자 코드 (유전자형)와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나타난다.
발현형질은 유기체의 삶에서 유전형질에 비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발현형질의 개체차이의 과정에서 유기체는 자신의 진화에 참여하며 고유한 역할을 한다. 적응진화에서 유전자가 주도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기체의 진화를 쫒아간다.
발현형질의 새로움은 유전자가 아니라 스스로에 의해 재조직된다. 발현형질에 의한 재조직된 조건이 진화를 주도한다. 따라서 발현형질이 유전행질에 선행한다.
도브잔스키의 신다윈주의와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전통에서 하버드 대학의 생물 유전학자 르온틴은 정치 사회적 다원주의를 비난한다. 그는 윌슨의 사회 생물학과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공격한다. 유전자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가 콘텍스트와 상호작용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개별적인 유전형질은 자기 반응을 하며 유기체가 어떻게 발전하고 다양한 환경에 반응 하는지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유전형질은 발현형질을 열거하는 다양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모든 유기체는 유전자와 환경의 시퀀스ㅡ세포성장과 분열의 무작위적 우연성에 의해 형성되는ㅡ의 상호작용의 귀결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유전자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유전자에 의해 선택되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비록 내가 유기체의 모든 유전자의 분자 분화를 완벽하게 안다고 해도 어떤 유기체가 출현할지 예측할 수 없다 (Lewontin, Biology as Ideology, 25-6).
다윈의 진화론과 양자역학
자연과학은 원인에 기초해 이루어진다. 우리가 과정을 이해한다면 과학은 과정을 부분들의 전체로 환원한다. 발생하는 모든 것은 구성분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귀결이다. 과학은 "어둠 속에서 촛불"처럼 (칼 세이건) 봉사한다.
과학적 유물론은 결정론적 환원주의를 방법론으로 채택하며, 사건은 물질적인 차원에서 결정된다. 생명체의 분자들은 생화학의 규칙에 복종하며 진화는 유물론을 생의 기원으로 확장시킨다. 생은 유물론적 방식으로 해명된다. 살아있는 세포도 순수하게 물질적인 규칙에 따라 작동한다. 우리의 생은 당구장의 공처럼 힘과 이미 움직임 가운데 있는 공들의 충돌에 의해 지배된다.
과학적 유물론은 뉴턴의 물리학에 기초한다. 그러나 양자혁명은 뉴턴의 확실성을 분쇄한다. 전자는 원자의 구성분이며 물질의 화학적 특성을 결정하는데 본질적이다.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통해 입자에 대해 완전히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입자의 양과 모멘텀 (움직이는 물체의 크기와 운동량)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우리가 입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결정한다고 해도 모멘텀을 알 수가 없다. 모멘텀을 정확히 측정한다고 해도 위치에 대한 정보는 상실된다. 양자이론의 불확실성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원칙적으로 항상 개연적이다. 양자 현상은 화학결합이나 에너지 흡수나 방사성 붕괴 (원자핵이 자발적 방출을 통해 에너지를 잃고 안정된 상태로 가는 것)에서 중요하다.
양자의 현실은 자연의 개연성을 말하고, 뉴턴의 인과율에 기초한 물리학적 확실성이 오류임을 드러낸다. DNA 분자는 개별 원자의 행동을 중요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구조화 되어있다. 분자가 물질의 성질을 나타내는 가장 작은 입자라면 원자는 물질의 성질을 나타내지 않는 가장 작은 입자이다.
DNA 의 복제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날 때 네개의 DNA 염기 (아데닌 , 구아닌, 시토신, 티민) 가운데 하나는 완전히 다른 염기로 변한다. 이러한 변화는 유전자의 코드에 영구한 영향을 미친다.
양자의 비예측성의 사건은 우주 방사선 (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지는 높은 에너지를 가진 각종 입자와 방사선), 방사성 붕괴 그리고 DNA 분자의 오류와 돌연변이를 포함한다. 무작위적 돌연변이와 개체차이 (variation)는 불확정적이며 진화 또한 불확정적으로 진행한다. 다윈의 진화론은 뉴턴의 세계안에 근거된다.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아무리 조그만 사건이라도--은 진화의 과정과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